
농민 보조지원 전담부서 설치
전국서 처음 교육복지과 신설
산천어축제 880억원 경제효과
2먼8천명대 인구달성 역점사업
화천군은 광복 이후 70년이 지나는 동안 급격한 도시화에 따른 인구 유출로 1965년 5만6,000여명에 이르던 인구가 현재 3만명 이하(2만7,215명)로 줄었다. 1945년 광복 이후 북위 38도선 이북인 화천군은 북한 공산 치하로 지역 발전과 주민들의 삶 자체가 암흑기였다.
휴전 이후인 1954년 10월 법률 제350호 '수복지구임시 행정조치법'이 제정 공포되면서 지방의회를 두지 않고 5개 면에 읍·면장을 도지사 임명제로 했다. 1959년 1월1일 내무과와 산업과를, 1961년 10월 내무과와 재무과, 교육과, 산업과, 건설과를, 1962년 3월 법률 제1039호 농촌진흥법 공포에 따라 군수 소속 하에 농촌지도소를 두게 됐다.
현재 화천군은 1실 10개과와 직속기관으로 보건의료원, 농업기술센터, 5개 읍·면을 두고 있다. 민선 6기 출범을 시작으로 화천군은 군정의 최우선 가치를 주민에 두고 '연말까지 2만8,000명의 인구 증가와 향토인재 양성, 민생안정,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비전을 향해 달리고 있다. 우선 농민들의 소득 창출을 위해 농업기술센터 내 농업정책과를 본청 농촌개발과로 변경, 농업인에 대한 보조지원을 전담하도록 일원화했다. 보조금 현황관리시스템을 구축, 편중·중복지원을 막고 심의위원회는 농업인 및 작목반 위주로 구성해 투명성 및 현장 중심의 정책을 실천하고 있다. 보조금 지원기준을 만들어 사업 구분에 따라 기존 50%에서 70~100%로 확대했다.
또 '화천의 미래는 인재 육성'이라는 목표로 전국 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교육복지과를 신설했다. '꿈이 있어 행복한 화천 교육'이라는 비전을 설정해 2015년도에만 7개 분야 40개 사업에 150억여원을 교육정책에 투자하고 있다. 특히 춘천과 화천을 잇는 국도 5호선 4차선화와 동서고속화철도 조기 착공 등 교통 인프라 확충에도 온 힘을 쏟고 있다.
올 1월 산천어 축제에는 23일간 150만2,882명이 찾아 880억여원의 지역경제 파급효과를 나타내는 등 지역 발전의 신성장 동력이다. 이어 2만8,000명대 화천 인구를 달성하기 위해 군(軍)부대 자매결연사업에 그치지 않고 현장 중심의 인구늘리기운동을 역점적으로 펼치고 있다.
무엇보다 군이 시행하는 모든 사업 및 시책은 민생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바탕을 두고있다. 우선 화천 북부권역의 군부대 여건 변화로 낙후성이 가중되고 있는 오음리와 산양리, 봉오리, 다목리, 사창리 5개 권역에 대한 특별 경제 활성화 계획을 마련해 상경기를 활성화하기로 했다.
화천읍은 개봉관인 산천어시네마와 종합아트플라자 조성 등 산천어 축제를 통한 실질적 주민소득을 창출하기로 했다. 간동면은 생활체육공원 건립과 농업 경쟁력 강화 사업에 주력할 방침이다. 하남면은 원천리, 계성리, 서오지리 일대를 중심으로 한 꽃빛향 사업과 호수변 힐링관광산업을 육성하기로 했다. 상서면은 평화생태마을 조성과 산채 특산화 및 감성문학관과 연계한 시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사내면은 도서관 및 영화관 건립 등 화천군의 제2의 도시에 걸맞은 다양한 사업을 펼치기로 했다.
무엇보다 군은 평화의 종 공원과 월남참전용사 만남의 장 등 DMZ 관련 다양한 체험관광지와 평화의 댐 상류 습지, 생태탐방로, 산천어 축제 등을 바탕으로 청정 자연환경이 어우러진 전국 제일의 평화·생태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다.
화천=정래석기자
■화천군 연혁
△고구려시대:생천군과 야시매라 칭함.
△통일신라 경덕왕 때:낭천으로 개칭.
△1902년(조선 고종 39년):화천으로 개칭.
△1979년:화천면이 화천읍으로 승격.
△현재:1읍 4개 면 84개 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