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복 이듬해 '춘천부'로 승격
60년대 인구 8만 전국 13위
수도권 뛰어난 접근성 바탕
레고랜드 등 일류관광지 도약
춘천은 고대 맥국(貊國)의 도읍지로, 삼국시대 영서지역의 중심지로, 조선시대에는 강원도 수부도시로 지역 발전을 견인해 왔다. 최근에는 시 개청 63년 만의 시청사 이전 확정, 레고랜드 코리아 조성, 삼악산로프웨이 등 굵직한 사업을 연이어 추진하며 관광 중심 도시로의 새 도약을 하고 있다. 1945년 광복 이후 쉼 없이 달려온 70년의 역사를 사료(史料)를 통해 돌아보고 이를 바탕으로 한 춘천의 미래를 내다본다.
■1948년 춘천'시'가 되다=1945년 8월15일 광복 이후 1년여 뒤인 1946년 6월1일 군정(군정)법령 제84호로 춘천읍이 춘천부로 승격돼 24개 동을 관할하게 됐다. 이때 춘천읍 외곽을 둘러싼 춘천군은 춘성군으로 개칭돼 행정구역이 갈라졌다. 이후 1949년 8월15일 지방자치법이 시행되면서 종전의 모든 부(府)가 시(市)로 개칭돼 춘천부는 비로소 춘천시가 됐다.
■인구 13만명에서 28만명 … 45만명을 향해=광복 직후 행정구역 시·군 통합 이전 춘천시 인구는 5만4,000여명, 춘성군이 8만여명으로 기록돼 있다(1949년 인구센서스). 이후 춘천시의 인구는 1990년 17만여명에 이르렀고 통합 이전의 춘성군은 4만3,000여명으로 줄었다. 춘천시는 1960년대에는 8만여명으로 전국 13위의 도시였으나 1990년의 17만명은 전국 29위였다. 28만명을 돌파한 올해는 전국 시·군·구 가운데 50위권 밖으로 밀려 있으나 2030년 45만명 인구를 목표로 광역도시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주택 8,500가구에서 11만4,000가구로 '13배' 증가=1940년대 후반 8,500호의 가구로 90%가 넘는 주택보급률을 보이던 춘천은 6·25전쟁 이후 6,000채가 넘는 주택이 파괴됐다. 이후 정부는 1955년과 1956년 재건(희망)주택 400채를 짓는 등 주택 복구를 전개했다. 1970년대부터는 아파트의 대량 보급이 시작됐다. 올 8월 현재 가구 수는 11만4,000여 가구다. 70년을 거치며 13배가 증가했다.
■심헌구부터 최동용까지 5명의 직선제 시장=춘천은 1956년 지방자치법 제2차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같은 해 8월8일 3년 임기의 춘천시장 등을 직선으로 선출했다. 제1대 춘천시장 선거에서는 자유당의 심헌구 후보가 최초의 민선시장에 당선됐다. 이후 1995년 6월27일 4대 전국동시지방선거까지 전면적인 지방자치제는 오랜 기간 중단됐다. 민선 1기 춘천시장 선거에서는 민자당의 배계섭 후보가 당선돼 시정을 이끌었다. 이후 2014년 민선 6기 들어 현 최동용 체제에 이르렀다.
■SOC 확충 일류 관광지 도약의 발판 마련=1967년 완공된 의암댐은 도청 소재지인 춘천시를 전국 유수의 '호반의 도시'로 만들었다. 6년 뒤인 1973년에는 동양 최대 사력댐인 소양강 다목적댐이 준공되며 관광도시로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1939년 개통된 경춘선 단선철도 이외의 이동로가 없던 춘천은 1960년대 국토건설사업을 계기로 춘천~원주 간 국도 5호선이 완공되고 1980년대 춘천~서울 간 국도 46호선이 이어지면서 비로소 도로망을 갖추기 시작했다. 이후 중앙고속도로(1995년), 춘천~서울고속도로(2009년), 경춘선 복선전철(2010년)이 차례로 들어서며 이동 시간의 획기적인 단축 효과를 누리게 됐다. 일류 관광지로의 도약을 위한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춘천=이무헌기자
■춘천시 연혁
△1403년:조선 태종 3년 춘천으로 개편.
△1931년:춘천읍으로 승격.
△1949년:춘천부를 춘천시로 개편. 춘천시
인구 5만4,000명, 춘성군 8만명.
△1967년:의암댐 완공 호반의 도시로 성장.
△1973년:동양 최대 사력댐 소양강댐 준공.
△1995년:춘천시·춘천군 춘천시로 통합.
△2015년:8월 인구 28만 돌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