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창간특집]근대화의 주역 공업도시에서 청정 관광·에너지 생태도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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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약의 70년 - 삼척시

◇1970년대 삼척시가지. ◇2015년 삼척시가지. ◇2015년 정라항. ◇1960년대 정라항.(사진위쪽부터)

탄광·시멘트 호황 4대 공업도시

산업 사양길 … 인구 30만→7만명

동굴·해안 기반 관광자원 발굴

신재생에너지 육성 … 회생 노려

오랜 역사와 문화적 전통성을 갖고 있는 삼척은 광복 이후 국내 4대 공업도시로, 석탄과 석회석 산업을 주력으로 삼아 국가 근대화에 기여했다.

이후 정부의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으로 인한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환선굴과 대금굴의 개발과 해안절경 등을 활용한 관광자원 발굴 등 관광정책을 지역경제 회생의 기회로 삼아 관광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고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육성하는 데 열정을 보태고 있다.

삼척은 1917년 삼척군 부내면을 삼척면으로 개칭한 뒤 1938년 10월1일자로 삼척면이 삼척읍으로 승격했으며, 1979년 말 삼척군은 5읍 5면의 인구 30만명이 넘는 전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군'이 됐다.

이후 1986년 삼척군 삼척읍이 삼척시로 승격됐다. 이어 1995년 1월1일자로 삼척시 일원과 삼척군 일원이 도·농 복합형태의 삼척시가 돼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1940년을 전후해 인구가 급증한 것은 1938년 삼척읍 승격과 1942년 일본 오노다시멘트(현 동양시멘트) 설립 등이 기인했고, 이에 따라 광복 이후 인구수가 꾸준히 증가했다.

1979년 인구수는 29만9,905명에 이르렀으나 1980년 북평읍이 동해시로 편입되고 1981년에 장성읍과 황지읍이 태백시로, 그리고 1986년에 삼척읍이 삼척시로 분리·독립됨에 따라 인구가 급격히 감소했다. 이후 인구 감소는 계속됐는데 이는 행정구역 개편에 따른 것이 아니라 순수 인구 유출에 의한 감소였다.

도시 내 농업·어업 인구의 지속적인 유출과 더불어 주요 경제활동의 침체 및 도시기반시설 미비 등이 인구 감소의 주요 요인으로 보인다.

1980년까지만 해도 삼척군은 도내 20개 시·군 가운데 가장 면적이 넓고 인구도 많았지만 지난해 말 기준 7만2,939명이 거주하고 있다.

삼척지역은 일찍부터 석탄산업이 발달했고, 석회암층이 풍부하고 철도 및 항만시설이 발달해 국내 시멘트 공업의 중심지를 이뤘다.

풍부한 석회석과 1982년 폐쇄된 삼척화력발전소와 삼척항을 기반으로 도계읍에 석공 도계광업소, 경동탄광이, 사직동 일대는 석회암 지역으로 국내 굴지의 시멘트 생산업체인 동양시멘트와 석회석 채광업체인 장자삼척광업소가 입지해 삼척시의 공업 중심지 역할을 해 왔다.

석탄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고 시멘트 산업 또한 경쟁체제에 돌입하면서 삼척시는 관광산업을 모토로 지역경제 회생을 노리고 있다. 동굴관광과 함께 20㎞가 넘는 해안선을 기반으로 해양레일바이크와 해상로프웨이, 대명리조트 유치 등 관광산업이 추진되고 있으며, 원덕읍 지역은 종합발전단지와 LNG생산기지가 들어서 에너지 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다.

민선 6기 들어 삼척시는 청정에너지 도시 기반을 다지기 위한 태양광발전소 등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본격 추진과 천혜의 자연환경을 기반으로 하는 '사람과 자연이 함께하는 생태도시'를 만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삼척=황만진기자 hmj@kwnews.co.kr

■삼척시 연혁

△1938년:삼척면이 삼척읍으로 승격.

△1979년:삼척군은 5읍 5면의 인구 30만명이 넘는 전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군'.

△1980년:삼척군 북평읍을 명주군 묵호읍과 합쳐서 동해시 신설, 원덕면이 원덕읍으로 승격.

△1981년:삼척군 장성읍, 황지읍이 태백시로 분리.

△1986년:삼척군 삼척읍이 삼척시로 승격.

△1995년:삼척시와 삼척군이 도·농 복합형태의 삼척시로 통합.

△1998년:사직동을 남양동에, 당저동·도원동을 성내동으로 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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