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강원포럼]임인년 동해안 산불의 교훈

황정석 산불연구소 소장 농학 박사

이른 봄 산불이 거세다. 예년보다 앞당겨진 산불로 동해안 일대는 전쟁터나 다름없다. 적은 강설에 건조한 겨울을 보내고 지표면에 누적된 마른 연료가 불쏘시개가 돼 고온건조한 남서풍과 소나무가 화마를 키웠다. 발생 당일 주불이 동해안까지 번져 꺼지는가 싶더니 우측 화변과 후진 산불이 다시금 남서쪽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비화(飛火)되고 있다. 낮에는 진화 헬기가 거친 바람을 뚫고 조준 방수(放水)하지만 조준점을 빗나가기 일쑤다. 삼척, 동해 등 동시에 여러 지역에서 발화된 불이, 지역별로는 메두사와 같이 다화두(多火頭) 되면 헬기 자원이 부족하게 되고, 결국 바람과 연료를 따라 사방으로 산불 범위를 넓힌다.

당초 도로변에서 시작돼 숲을 태우고 농산촌을 위협하던 산불이, 밤을 틈타 시·군의 능선을 넘고 시·도의 하천 경계를 건넌다. 심지어는 방호가 엄중한 원전과 LNG 저장시설을 위협하기에 이르렀고, 도로와 철도를 불통시키며 도시의 주택을 불태우는 상황이다. 이른바 도시형 산불의 시작이다. 산림과는 비교되지 않는 자산가치가 상실되고 인명이 직접 위협받는다.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산불을 3년 만에 다시 맞닥뜨린 주민들은 대경실색했다.

2000년 동해안 산불 당시 야간의 강풍 속 동시다발적 산불에 헬기도 속수무책이고, 큰 산불은 반드시 도심을 위협한다는 교훈을 얻었건만, 22년이 지난 임인년에 더한 산불을 맞았다. 주무관청의 최고 성과였던 과학기술에 기반한 스마트한 산불 대응도 무용지물이었다. 100여대의 진화 헬기도, 수천명의 인력 동원도 넓게 퍼진 산불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인 상황이 되고 말았다. 더 이상 기후 탓, 시대 탓만 할 일이 아니다. 모든 것을 원점에서 문제점을 찾고 실효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어 다음 몇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산불의 확산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는 서→동으로 발달된 소능선을 중심으로 남북 동해안 고속도로 방향으로 ‘화재 진화선(Fire Breake

r)'을 조성해야 한다. 솎아베거나 방치되는 숲을 집약적으로 관리하고 산불에 강한 숲으로 조성해 산불의 도심 진입을 최소화해야 한다.

둘째, 2005년 낙산사를 소실시킨 양양산불과 2019년 동해안 산불에서 야간과 강풍을 동반한 산불은 항공진화로도 불가하다는 것을 경험했다. 더 이상 항공진화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지상에서 확산을 저지할 수 있는 장비 확충 및 기술을 고도화해야 한다.

셋째, 강제적 산불방지 조례의 제정이다. 최근 10년 이내의 신축된 주택과 향후 신축될 주택은 ‘화재 안전구역(Fire Safety Zone)'을 구축하는 것이다. 주택과 도심 주변 10~100m 이내에 존재하는 숲의 가연성 물질을 제거하고 방화수림대를 조성하며 부락단위 비상소화장치를 설치한다. 넷째, 산지 주변 건축물의 재료 선정에 행정이 개입하는 것이다. 석유계 유기화합물로 제조된 루핑은 시공성, 경관성 측면에서 매우 훌륭한 건축재료이나, 산불피해 사례가 많다. 산지 주변에서의 건축물 지붕재료와 건축재료에 대해 난연성, 가연성을 기준으로 건축 승인 시 안전을 위한 계도와 규제가 필요하다.

다섯째, 산불피해를 지역발전의 전환기로 삼아야 한다. 신속한 복구도 중요하지만 ‘신속한 복구계획 수립, 당년 내 완료'라는 목표는 피해지역의 원상복구는커녕 21세기 생업과 생활을 보장하는 산촌 재생을 담보하지 못한다. 행정 일방의 복구 활동이 아닌 주민과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산지 복구, 농산촌 복구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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