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감시탑·초소로 쓴 망대 중심으로
다닥다닥 집들 사이에 좁다란 길 생겨
박수근·권진규 청년 시절 이곳서 보내
다큐 제작 입소문 '문화탐방지' 떠올라
동네 이곳저곳을 연결해 주는 골목길은 삶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추억' 그 이상의 장소다. 어린 시절 다방구를 하고 숨바꼭질하면 숨을 곳이 천지에 널려 있던 천혜의 놀이터였고, 늘어선 담벼락은 꼬마 아이들의 낙서장이었던 곳. 굳이 초인종을 누르지 않아도 “00야 노올자~” 하고 부르면 “알았어. 기다려.” 하고 이내 답이 들려오던 정겨운 공간이었다. 평상에 둘러앉아 하루 종일 이어지던 엄마들의 수다 삼매경은 덤으로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골목길의 풍경이었다. 이제는 점점 사라져 졸지에 관광코스로 변신했지만, 그래도 팍팍한 삶 속에서 잠시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힐링의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으니 반가울 따름이다. 사람이 있고 그들의 이야기가 있어 좋은 골목길 탐방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춘천 약사명동 언덕 위. 봉긋하게 올라온 그곳에 한때 화재를 알리는 감시탑으로, 또 교도소 재소자들을 감시하기 위한 초소로 사용됐던 3층 높이의 건축물, '망대'가 자리 잡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져 춘천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로 꼽히는 망대는 6·25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질긴 생명력으로 온전히 처음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곳을 이정표 삼아 부유하던 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마을이 생겨났다. 그리고 마치 의지라도 하는 듯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 사이로 좁다란 골목길이 생겨났으니 그곳이 바로 '망대골목'이다.
실 망대 그리고 망대골목은 약사천 복원사업이 진행되기 전까지는 춘천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축제극장 몸짓 앞 차도(춘천로) 옆에 빼곡히 건물들이 들어차 있었으니 보일 리 만무했다. 다만 양구 출신 박수근 화백과 춘천고 출신 천재 조각가 권진규 선생이 청년기를 보냈다는 얘기가 전해지면서 그들의 흔적을 찾는 사람들이 더러 방문하는 정도였다.
지만 이제 시야를 가로막던 건물들이 헐려 나가고 망대 옆을 가로지르는 약사리고개(약사고갯길)가 4차선으로 확장돼 사람과 차량의 통행이 늘면서 자연스레 사람들의 시선은 덩그러니 솟아 있는 흰색 건물, '망대'로 향하게 됐다. 망대는 때마침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지고 입소문을 타면서 순식간에 '문화탐방지'가 되어버렸다.
망대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좁다란 골목길을 통과해야 하니 그곳 또한 명소가 되었다. 최근에는 주말이나 휴일에 많게는 30명이 넘는 탐방객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망대골목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먼저 망대골목 초입 삼거리에 있는 '기대슈퍼'를 들르는 것이 좋다. 시원한 음료수 한잔 들이키며 망대골목 토박이인 슈퍼 주인 아주머니 얘기를 듣다 보면 망대의 역사부터 투어(?) 요령까지 자세하게 들을 수 있다.
써 27년째 슈퍼를 운영하고 있다는 정성여(74)씨는 망대골목의 '문화해설사'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아이고, 제주도에서도 와. 난 아주 길 안내자 하느라고 고생이야. 생기는 것도 없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웃음)… 망대가는 골목길은 간단해. 계단으로 된 첫 골목을 올라가면 대문이 보이거든. 그게 막힌 게 아니니까 차렷하고 우회전하면 바로 망대로 가는 골목이야 그게.” 아주머니의 말대로 기대슈퍼에서 몇 발자국 아래로 내려가니 왼편으로 좁은 계단으로 된 오르막 골목길이 보인다. 골목 정상에 녹색대문집이 바로 보이는데 거기서 오른편으로 돌면 망대 바로 아래까지 다다를 수 있다. 그곳에서 보는 춘천 풍경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사실 망대골목길은 생각처럼 그렇게 크거나 길지는 않다. 하지만 그 골목길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느낌을 들게 한다. 우산도 펼 수 없을 정도의 좁은 넓이는 기본이고 집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있어 넋을 놓고 다니다가는 머리를 찧을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이런 망대골목을 한국에서 가장 좁은 골목길이라고도 부른다. 골목길은 서로 만나 심하게 꺾이기도 한다. 불규칙한 높이는 사람들이 이곳에 이주해 살면서 그때그때 만들어진 흔적 처럼 보인다. 길 양편으로 늘어선 잿빛 담장을 타고 걷다 보면 녹슨 철조망, 고추를 말리는 광주리, 칠이 벗겨진 대문, 화분들이 파란 가을 하늘 아래 꽤나 고즈넉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오석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