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열차, 특별열차 그리고 통일열차”
반세기만에 기적소리를 울리며 남측으로 내려온 북의 열차 '내연 602호'. 내게는 '꿈의 열차'이며 '특별열차' 그리고 '통일열차'라는 3가지 깊은 인상으로 가슴속에 자리 잡았다.
국회 건설교통위원장으로서 지난 9일 '남북철도 연결구간 열차 시험운행'에 참여하라는 공식 통보를 받자마자 내 가슴은 서둘러 금강산으로 줄달음치기 시작했다. 꿈에 그리던 일이 현실로 다가온 역사적인 초청이었던 만큼 모든 국 내·외 약속들을 뒤로 하고 시험운행 행사에 참여했다.
'꿈의 열차'를 타기위해 지난 16일 고성에서 뭉친 우리 일행은 설레임에 밤 늦게까지 손에 손을 맞잡고 건배를 하며 천당으로 가는 기분의 '천당주'를 연거푸 들이키며 흥분된 시간을 보냈다.
17일 오전에 도착한 금강산역에는 '금강산 관광객을 동포애적 심정으로 열렬히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우리를 반겼다.
금강산역에서 진행된 기념행사에 앞서 양측 5명씩의 주석단이 대표자로서 악수를 나눴다. 남측은 나와 이용섭건교부장관, 신언상통일부차관, 정문헌국회의원, 이성권한국철도시설공단이사장 등 5명, 북측은 김용삼철도상단장, 주동찬 부단장, 박정성, 장우영, 한인덕씨 등 5명이었다.
의자도 없이 15분간 진행된 기념행사는 초등학교 조회와 같은 분위기였고, 주석단은 마치 조회때 앞에선 선생님과 같은 모습으로 참여했다.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승차한 북측 '특별열차'는 모두 6량으로 1량이 106석. 내가 탄 3호차에 대해 북측 인사는 “김일성 수령동지가 친히 탔던 차”라고 친절한 설명을 곁들였다.
금강산역을 출발하는 열차 양옆에는 고교생 정도의 학생 100여명이 서서 손을 흔들었다. 감호역에서 세관·통행검사를 받고, 삼일포역을 스쳐 지난뒤 제진역에 도착하기까지 당초 15분 정도가 소요된다지만 시험운행이라 40분이 소요됐다.
덕분에 함께 자리한 북측 주석단과 제공된 용성사이다, 딸기단물, 생수, 사과 2개, 배 1개 등을 나눠 먹으며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북측의 김용삼철도상은 “동해선은 지난 1947년부터 김일성장군이 철로를 설치할 것을 지시해 금강산 절경을 볼 수 있도록 준비해 왔고 결국 오늘에야 남한까지 운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감격해 했다.
열차내에서 북측 주석단은 “남측이 강릉-제진간 동해북부선을 진작에 연결했더라면 시험운행이 앞당겨 졌을 것”이라고 주장했고, 이에 우리 남측대표단은 “당초 약속대로 지난해 시험운행이 이루어졌더라면 강릉-제진간 연결이 앞당겨져 TSR과의 연결도 빨라지지 않겠느냐”고 응수, 조금은 다른 시각차를 나타냈다.
김용삼철도상은 “이날을 얼마나 고대했습니까. 반세기가 걸렸습니다. 북과 남이 손을 잡으면 못할 일이 뭐가 있습니까”라고 말한데 이어 “6·15 공동선언의 이념을 잘 따르면 이 열차가 '통일열차'가 될 것”이라고 말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남측 군사분계선을 지날때는 지금까지 억눌렸던, 잘 흐리지 않던 핏줄이 한꺼번에 뻥 뚫리는 듯한 아득한 느낌이 밀려왔다.
남으로 향하던 열차내에서 멀리 통일전망대가 눈에 들어왔고, 시험운행열차를 구경하려는 관광객들이 울긋불긋한 한무더기 철쭉으로 피어났다.
흥분감을 억누르지 못한 나는 즉석에서 동행들에게 시를 읊어 주었다. 내가 쓴 노래 '나의 조국'중 2절이었는데 이날 분위기와 꼭 맞아 떨어졌다고들 한다. 박수세례를 받았으니 말이다.
북측 대표단과 헤어질때 나는 함께 자리했던 인사들의 요청에 따라 갖고왔던 '나의 조국' CD 80장을 선물했다.
어쨌든 제진역이 가까워지면서 조그만 소동이 일었다. 북측 인사들의 경우 이날 행사를 단지 시설공사가 마무리된 만큼 그냥 시험운행을 하는 정도로만 인식을 하고 있었고, 이때문에 남측의 대규모 취재진과 환영분위기에 크게 눈을 뜨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나아가 사진 촬영도 거부하는 바람에 나와 이용섭장관은 진땀을 흘리며 설득에 나섰다. 화동들이 꽃을 전달하는데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의 설득에 응한 북측 인사들은 예정된 스케줄에 따라줬고 오찬장에서는 문배주니, 안동소주니 맥주니 돌아가며 건배를 하다 적지 않은 술과 들뜬 기분을 나눠 마셨다.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했던 북측 인사들은 북으로 돌아가며 눈물을 감추지 않았고 이를 지켜보던 나는 다시 무거운 책임감에 짓눌렸다.
북측 김용삼 철도상은 수차례 “왜 남측은 경의선만 신경쓰고 동해선은 방치하느냐, 동해선이 연결돼야 금강산도 쉽게 찾을 수 있고, '통일열차'가 돼 부산이나 유라시아까지 갈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오늘 행사가 통일을 앞당기는 시험이 아닌 보다 미래의 한반도를 만드는 계기가 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하루빨리 동해선을 완공해야 한다는 책무가 머리속 한 가운데 자리잡았다.
오늘 하루 금상산과 설악산에는 오전에 비가 왔지만 오후에는 맑게 개인 하늘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