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문화재로 보는 우리 역사]백두산 흑요석이 주성분 구석기시대 교류의 역사

39. 홍천 하화계리유적

◇홍천 하화계리유적의 좀돌날기술 관련 석기들.

호모사피엔스가 출현한 이후의 구석기시대 기술 수준은 그 이전에 비해 가히 '혁명'적이라 할 만큼 발전했다. 그 핵심이 되는 기술은 약 3만5,000년 전 무렵 출현한 돌날기술(石刃技法·blade technique)이다. 돌날이란 길이가 너비의 2배 이상이 되는 길쭉한 격지로 그 자체도 훌륭한 석기로 기능하지만 다른 석기를 만드는 1차 재료로 유용하게 활용된다. 이러한 돌날을 연속해서 만들어 내는 기술을 돌날기술이라고 한다.

돌날기술은 약 2만5,000년 전 무렵 출현한 좀돌날기술의 기술적 배경이 돼 준다. 좀돌날은 길이가 5㎝ 이하인 작은 돌날로 주로 결합식도구의 날로 이용됐다. 결합식도구는 현대의 카터칼처럼 날만 갈아 끼우면 재사용이 가능한 매우 효율적인 도구다.

중앙고속도로가 건설되는 과정에서 발굴된 홍천 하화계리유적에서는 좀돌날기술 관련 석기들이 대량 발견됐다. 하화계리유적의 좀돌날 석기는 대부분 흑요석으로 만들어졌는데 흑요석성분 분석 결과 원산지가 백두산으로 확인돼 구석기시대의 교류와 교역을 연구하는 자료로 그 중요성을 평가받았다. 한편 하화계리유적에서 두 군데의 석기제작장이 발견됐는데 사용된 석재와 제작된 석기가 서로 달라 이목을 끌었다.

국립춘천박물관에 복원 전시되고 있는 것은 석영류를 주요 석재로 사용했던 제작장이다. 석영 모루돌과 망치, 미완성의 찍개와 긁개 등이 발견됐다. 그리고 남동쪽으로 25m가량 떨어진 지점에서는 오로지 흑요석만을 석재로 사용한 제작장이 또 하나 발견됐다. 직경 2m가 조금 넘는 범위에 수천 점의 흑요석편이 흩어져 있었으며 그중 상당수는 좀돌날과 좀돌날을 만드는 과정에서 떼어진 조각들이었다.

두 곳의 제작장이 분리돼 있고 석재가 섞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엄격하게 두 종류의 작업이 구분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흑요석은 선사시대의 매우 희귀 자원이었다. 즉, 희귀자원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장인'의 존재를 상정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전문적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분업했음도 추정해 볼 수 있다.

<김상태 국립춘천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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