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하며 느낀 감회
100편의 시로 남겨
조선 초기를 대표하는 문인 김시습(時習·1435~1493년)의 본관은 강릉,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 법명은 설잠(雪岑)이다. 3세에 글을 지을 정도로 어릴 적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보여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21세 때 과거를 준비하던 중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르자 방랑생활을 시작했다. 성리학에 염증을 느껴 승려가 됐으며 홍산(鴻山) 무량사(無量寺) 청한당(淸閒堂)에서 59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김시습은 단종에게 절의를 지키기 위해 방랑생활을 하며 여러 곳을 유랑했는데, 31세 때 경주로 내려갔으며 이 무렵 우리나라 최초 소설인 '금오신화(鰲新話)'를 지었다. 이후 서울 수락산에 기거하던 김시습은 1482년(성종 13년) 폐비 윤씨 사건으로 정국이 혼란에 빠지자 이듬해 늦은 봄 다시 탁발승의 모습으로 관동으로 떠난다. 관동지방을 두루 여행하며 느낀 그의 감회는 '관동일록(關東日錄)'에 100여편의 시로 남겨졌다.
만년에 다시 떠난 관동 여행에서 그는 우선 옛 은거지인 춘천을 찾아 소양정을 둘러보고, 청평사에 한동안 머무르기도 했다.
소양정에서 읊은 그의 오연율시 '소양정에 올라'는 허균(許筠)이 '성수시화'에서 속기를 떨쳐버리고 화평(和平)하고, 담박한 최고로 아름다운 시로 꼽았다. '매월당시사유록(梅月堂詩四遊錄)'에는 김시습의 초상과 더불어 “화상에 대한 찬(自寫眞贊)”이 목판으로 새겨져 있다.
<강삼혜 국립춘천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