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덕, 진덕여왕 당시 신라 불교를 대표하던 대국통(大國統) 자장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화려한 서울 경주를 하직하고 강원도로 찾아와 수다사(水多寺)를 짓고 그곳에 머물렀다. 진골 출신이었으며,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올 때는 당 황제도 친히 그를 접견했고, 대장경 등 불교 관련 선진 문물들을 들고 오는 그를 온 나라가 환영했다. 귀국 후 황룡사탑을 건립하고 통도사를 창건하고 율령을 만드는 등 신라 불교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중국 복식과 연호를 받아들여 작은 소국이던 신라가 고대국가로 발돋움하게 했다.
이러한 자장이 경주를 버리고 명주 수다사에 머물면서 꿈에 문수보살의 부름을 받아 지금의 정암사인 태백산 석남원으로 거처를 옮기고 문수보살 만나기만을 고대했다. 문득 어느 날 늙은 거사가 삼태기에 죽은 강아지를 담아 메고 왔다. 자장이나 그의 시자 모두 자장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그 거사가 문수보살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문수보살은 혀를 차며 “아상(我相)을 가진 자가 어찌 나를 볼 수 있겠는가!” 하며 죽은 강아지를 사자 좌대로 변하게 해 남쪽 하늘로 날아올라가 버렸다. 자장은 그제야 서둘러 뒤를 따라갔으나, 문수보살은 까마득하게 멀어져 가고 자장은 뒤를 쫓다 낭떠러지에서 쓰러져 죽음을 맞았다.
'삼국유사'에서 전하는 쓸쓸한 자장의 말년 흔적이 전하는 수다사는 1983년 한 불교학자(당시 강원대 역사교육과 신종원 교수)에 의해 그 터의 모습을 드러냈다. 초기 신라 고승인 자장의 행적을 찾던 중 이름 없던 폐사지에서 수다사 이름이 새겨진 기와편을 발견해 수다사 위치를 학계에 알렸다. 이후 마을 주민에 의해 대광 28년(1188년) 수다사 명문이 쓰여 있는 작은 촛대 받침도 발견하게 돼 이곳이 수다사임을 명백히 입증하게 됐다. 발견된 문화재는 국가에 귀속되어 국민의 품으로 돌아온다. 우리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이 작은 촛대를 보면, 애타게 그리워하던 문수보살을 눈앞에 두고도 어리석음으로 인해 그 대상을 만나지 못했던 자장의 너무나도 인간적인 면모를 그려보게 된다. 자장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우리 같은 범부들은 어떠할까?
<강삼혜 국립춘천박물관 학예연구사>
■제작연도 : 고려 1188년
■크 기 :지름 12.2㎝
■출토장소 : 평창군 진부면
■소 장 처 : 국립춘천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