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문화재로 보는 우리 역사]온갖 문양 꾸민 선조들의 편지지 사모하는 님을 향한 애절함 담겨

37.시전지(詩箋紙)에 담은 사랑…그리움①

◇'시전지 판과 시전지' 원주고판화박물관 소장.

430년 떨어진 시공간에서 온 편지가 있다. 한 여인이 태중의 아이를 남기고 떠나간 남편에게 곡진히 눈물로 써내려간 편지다. “이보세요, 부인. 남들도 우리 같이 이렇게 많이 사랑할까요?”라고 귀엣말을 남기던 그 사람이 이제 세상에 없다. “둘이서 머리가 세도록 사랑하며 살고, 같은 날에 죽자”던 나의 그 사람이 이제 없다. “당신을 잃어버리고서는 나는 아무래도 살 수가 없어요. 당신에게 가고자 하니 나도 데려가주세요…” 여인은 우주를 잃은 것이다.

1998년 안동시 정상동 택지개발 지구에서 이름 모를 무덤을 이장하는 중에 미이라 한 구가 발견됐다. 400여년 전 조선시대의 무덤임이 발굴조사 결과 확인됐다. 망자는 고성이씨 이응태(1556~1586년)로 밝혀졌다. 젊은 나이 31세에 남편이 병석에 눕자 아내(원이엄마)는 남편의 병이 낫기를 기원하면서 자신의 머리카락과 삼을 엮어 미투리를 삼았다. 그러나 남편은 그 신발을 신어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고, 아내는 애끓는 마음으로 미투리를 완성해 편지와 함께 무덤 속에 묻었다. 세상 밖에 알려진 이 편지는 딱히 연인과 부부의 정을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울컥하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인간 내면에 깃든 연정이고, 연민이며, 인간애에 기인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이렇게 아리도록 아름다운 편지들이 있다.

마땅히 편지는 편지지에 쓰여 편지봉투에 담기게 되는 것이다. 역사의 강을 따라 우리 곁으로 흘러 온 편지는 어떤 형태로 확인되는가? 시전지는 '詩箋紙'라고 쓰고 화전지(花箋紙)라고도 부른다. 시전지는 다양한 문양과 아름다운 색상으로 꽃같이 곱게 꾸며진 선조들의 편지지와 봉투다.

색지(色紙), 미색지(米色紙) 등을 이용했고, 압인(押印)으로 누름 문양을 찍어 꾸미기도 했으며, 목판인쇄(木版印刷)를 통해 당시 유행하던 그림과 패턴들을 찍어 꾸미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사용된 이미지는 사군자, 석죽도, 매조도 등이었으며, 드물게는 기명절지화와 고사인물화도 사용됐다.

<김순옥 국립춘천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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