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남자배구가 파키스탄에 패배해 12강에서 충격적인 탈락을 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공식 개막하기도 전에 탈락하면서 17년 만에 금메달을 목에 걸겠다는 각오는 공염불이 됐다.
국제배구연맹(FIVB) 세계랭킹 27위로 임도헌 감독이 이끈 한국은 지난 22일 중국 저장성 사오싱시 중국 경방성스포츠센터 체육관에서 열린 12강 토너먼트에서 파키스탄(51위)에 세트 점수 0-3(19-25 22-25 21-25)으로 완패했다.
23일 막을 올리는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회식 전에 축구, 남자 배구 등 일부 종목이 사전 경기로 열린 가운데, 대표팀은 기대에 전혀 부응하지 못한 채 세 경기 만에 7∼12위 순위 결정전으로 떨어졌다.
결국 지난 2006년 도하 대회 이래 17년 만에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겠다는 한국의 목표는 처참하게 깨졌다.
게다가 아시안게임에서 1962년 자카르타 대회 이래 61년 만의 '노메달'이라는 굴욕까지 더해졌다.
한국 남자배구는 1966년 방콕 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이래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까지 아시안게임 14회 연속 메달(금메달 3개·은메달 7개·동메달 4개)을 따냈다가 이번에 그 기록이 끊겼다.
한국은 이틀 전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인도(73위)에 11년 만에 패해 가시밭길을 자초했다.
캄보디아를 잡고 조 2위로 12강 토너먼트에 올랐지만, 큰 키에 안정적인 리시브를 앞세운 파키스탄에 힘 한번 못 쓰고 완패해 망신을 자초했다.

아시아의 라이벌인 일본(5위), 이란(11위), 카타르(17위), 중국(29위)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거나 제 실력을 유지하는 반면 '우물 안 개구리'로 성장을 멈춘 한국 배구는 인도, 파키스탄 등 급성장하는 남아시아 팀에도 이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처지에 내몰렸다.
한국은 경기 내내 파키스탄에 내준 주도권을 한 번도 뺏지 못하고 끌려가다가 백기를 들었다.
1세트에서 파키스탄의 고공 블로킹에 5점을 헌납했고, 키 189㎝의 파야드 알리 우스만(9점), 205㎝의 무라드 칸(5점) 두 날개 공격수에게 14점, 205㎝의 미들 블로커 압둘 자히르(3점)에게 거푸 실점했다.
세밀한 기술이 부족한 파키스탄이 어처구니없는 범실을 6개나 한 덕분에 그나마 1세트에서 따라갈 수 있었다.
2세트에서도 파키스탄의 연속 범실을 틈타 14-14 동점을 만들었으나 한국은 좀처럼 반전 기회를 잡지 못한 채 20점 넘어 연속 실점하며 벼랑 끝에 몰렸다.
서브로 활로를 모색했지만, 범실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1∼2세트에서 파키스탄의 공격을 블로킹으로 한 번도 차단하지 못해 스스로 늪에 빠져들었다.
한국은 3세트 2-4에서 이 경기 20번째 도전 만에 첫 블로킹 득점을 수확했지만, 파키스탄의 타점 높은 강타에 연거푸 뚫리며 12-17로 벌어진 끝에 결국 백기를 들었다.
한국은 블로킹에서 5-9, 공격 득점에서 34-45로 크게 밀렸다.
허수봉(현대캐피탈)이 11점을 올리며 분전했고, 우스만(20점), 무라드(19점) 파키스탄 쌍포는 한국 코트를 잇달아 맹폭하고 마치 우승한 듯 경기 후 크게 기뻐했다.

경기가 끝난 후, 대표팀을 이끈 임 감독은 "국제대회에서 우리의 실력이 이 정도"라면서 "정말 앞으로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해 바닥에 떨어진 한국 배구의 국제 경쟁력을 키우는 일이 단시일 내에 풀리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임 감독은 "전광인(현대캐피탈)의 발목도 좋지 않았고, 정지석(대한항공)도 항저우에 와서 컨디션이 떨어졌다"면서도 "이런 얘기는 다 핑계에 불과하다"라고 일축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좌우 날개의 밸런스가 맞지 않아 인도, 파키스탄을 상대로 어려운 경기를 펼칠 수밖에 없었다"라면서 "우리 미들 블로커진이 취약한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라고 짚었다.
허리 디스크 증세에 가까운 통증으로 제 컨디션이 아닌 한국 최고의 아웃사이드 히터 정지석은 이날도 교체 선수로 출전했다.
공격과 리시브 능력을 겸비한 전광인은 부상 탓에 상대 벽에 때리는 일이 잦았다.
왼쪽 날개가 사실상 맥을 못 추다 보니 한국의 공격은 균형을 잃었다.
한국은 이날 2세트까지 파키스탄 공격을 한 번도 블로킹으로 차단하지 못해 졸전을 자초했다.
그 사이 파키스탄 블로커에는 8점이나 헌납했다.
임 감독은 "기본적인 디펜스를 포함해 우리 선수들이 다듬어야 할 것이 많다"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번 패배로 한국 프로배구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오는 10월 14일 2023-2024시즌을 맞이하게 됐다.
한국은 오는 24일 오후 8시(한국시간) 항저우 린핑 스포츠센터 체육관에서 바레인(74위)과 순위 결정전을 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