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그림 속 강원도]‘금강산’ 이름 빌려 그린 강릉…암울한 일제강점기 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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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정종여 ‘금강산 전망’

1942년 여름 풍경 섬세히 표현
관념적 산수서 실경 산수화 전환

◇정종여 作 ‘금강산 전망’, 종이에 수묵담채, 135 x 350cm, 1942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한눈에 펼쳐지는 파도와 호수, 잔잔한 논과 굽은 소나무, 그리고 머리에 한가득 삶을 이고 돌아오는 아낙들의 행렬. 1942년 여름, 화가 정종여는 이 모든 것을 종이 위에 그려냈다.

작품의 제목은 ‘금강산 전망(金剛山展望)’. 그러나 실상은 경포대를 중심에 두고 바라본 강릉의 여름 풍경이다. 10폭 병풍으로 구성된 이 대작은, 겉으로는 금강산을 말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금강산을 향한 마음을 그려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병풍의 마지막 폭에는 “1942년 음력 5월 경포대에서 일만 이천 봉을 바라보며 정종여가 그렸다(壬午榴夏於鏡浦臺望萬二千峰 靑谿道人寫)”고 적혀 있다.

이 작품을 “경포대에서 만이천봉(금강산)을 바라보다”의 뜻을 지닌 ‘어경포대 망만이천봉(於鏡浦臺 望萬二千峰)’이라고도 부르는 이유다.

정종여는 1914년 거창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이후까지 활동한 한국 근대 산수화의 중추적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전통 남종화의 필묵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내며, 관념적 산수에서 탈피한 실경 산수화의 길을 개척했다. 그 전환의 결정적 증거가 바로 ‘금강산 전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 속 중심에는 경포호가 유유히 흐르고, 오른편에는 파도 일렁이는 동해바다가 펼쳐진다.

기와집과 초가집이 어우러진 마을, 율곡 이이 비각의 흔적 그리고 여름 들녘의 허수아비와 생선을 나르는 여인들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섬세하게 담겨 있다. 경포대에서 바라봤을 그 전경이 이렇게 넓게, 정교하게 병풍에 담긴 건 드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화면 구도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시점, 부감법을 썼다. 또 몰골법(沒骨法·윤곽선을 사용하지 않고 채색의 농담을 사용하는 기법)으로 사물의 경계를 부드럽게 풀었고, 담채로 색을 눌렀다. 먹의 번짐과 여백이 어우러져 병풍 앞에 서면 바람 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이 시기 한반도는 그야말로 암흑의 시기였다. 창씨개명과 신사참배 등 민족 정체성을 지우려는 시도가 이어지던 때다.

그렇다면 정종여는 왜 ‘금강산’이라는 이름을 빌려 강릉을 그렸을까. 이 땅의 상징인 금강산을 경포의 현실 위에 은유처럼 덧칠해 낸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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