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 ‘트라우마' 되살아나
농약 살포기계까지 동원 대응
삶의 터전 지키려 밤샘 사투
“진화 헬기 부족 원망스러워”
“하늘도 무심하지 옥계에 남아있는 산이란 산은 모두 다 타버려야 사람이 살 수 있으려나…”
2019년 동해안 산불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3년 만에 또다시 화마의 희생양이 된 강릉 옥계 주민들은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지난 5일 동틀 무렵 옥계면의 벌거벗은 민둥산 사이로 보이는 초록색 봉우리들은 붉은 화염과 새카만 연기에 휩싸여 있었다.
강풍을 타고 불씨가 이리저리 옮겨졌고 불길은 산 이곳저곳에서 우후죽순 일어나 주민들은 겁에 잔뜩 질려 발을 동동 굴렀다. 이날 새벽 1시8분께 발생한 산불에 잠조차 설친데다 매캐한 연기에 눈마저 붉게 충혈된 상태였다.
남양1리 흑시골 마을은 거센 바람으로 한쪽 불을 잠재우면 방심할 틈 없이 반대쪽에서 불길이 성큼 다가왔고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주민들의 눈물겨운 사투도 이어졌다.
동해시에 거주하는 이은남(여·48)씨는 고령의 부모님과 집을 지키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달려왔다.
이씨 일가는 레미콘 공장용 살수차와 농약 살포 기계 등 온갖 장비와 방법을 동원해 방어선을 구축했고 소방당국과 합동 작전에 나서기도 했다.
6일 다행히 강풍이 잦아들어 산림 당국이 본격적인 주불 진화에 나섰지만 주민들은 이틀째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남양1리와 2리 주민들은 불을 피해 마을회관에 모여 쪽잠을 잤고 밤새 교대로 집에 물을 뿌리는 등 긴장된 밤을 보냈다.
남양2리에 거주하는 신기선(84)·이옥란(89)씨 부부는 “마을은 고령자들이 대다수를 차지, 불에 맞설 기운도 없어서 뉴스만 보며 안전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며 “평생을 살아온 마을의 산림이 모두 불타 없어져 너무 슬프다”고 말했다.
날이 밝아서야 집으로 돌아가던 주민들은 마을 동·남·북쪽에서 여전히 연기가 올라오는 모습을 보며 초연한 얼굴이었다. 이복녀 남양2리 부녀회장은 “2019년 큰 산불을 한 차례 겪어봤음에도 두려운 마음은 더욱 커지기만 한다”면서 “진화 작업 중인 산림·소방 당국이 고맙고 다른 지역에 장비가 투입되는 것도 이해하지만 패닉에 빠진 옥계 주민들을 위해 헬기 수가 늘어나지 않는 점은 원망스럽다”고 울상 지었다.
강릉=김도균기자 droplet@kw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