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으악새코스다.
으악새는 '억새'를 이르는 말로 “아~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로 시작하는 고복수의 노래 '짝사랑'을 통해서도 잘 알려져 있다.
확실히 새(鳥)는 아니니 착각하지 마시길.
그렇다. 이번 코스의 최종 목적지는 가을 억새축제로 유명한 정선 민둥산이다. 명품하늘숲길 코스 중에 가장 짧은 구간이다.
산행을 떠난 날은 지난 11일. 얼마 전까지도 꽤나 억센 장맛비가 퍼부었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정선행 길에 올랐다. 여기저기서 산에 가는 게 위험하지 않겠냐고 걱정 전화가 오고는 있는데 목적지로 향할수록 멀끔히 갠 하늘이 도로 앞으로 펼쳐진다.
차는 어느새 증산초교 앞 공터 주차장에 다다랐다. 주차장 길 건너 바로 맞은편이 민둥산 정상을 향하는 들머리다.
민둥산 정상 가는길 급·완경사 선택 가능
끝없이 이어지는 오솔길·임도·돌멩이길
뜨거운 햇살·무더위 식혀주는 산바람 상쾌
구름이 손에 닿을듯 마침내 다다른 정상
눈앞 펼쳐진 억새초원 절경에 피로 사르르
# 코스를 결정하라=민둥산에 오르는 많은 사람은 증산초교 길 건너 맞은편 관문을 통과하는 코스를 주로 선택한다. 가장 일반적인 코스다. 이 코스를 '1코스'라고 하고, 여기서 조금 더 위쪽에 위치한 능전마을 주차장에서 시작되는 것을 '2코스'라고 한다. 삼내약수, 화암약수에서 시작하는 3·4코스가 있기는 하지만 이 구간은 증산초교를 기점으로 민둥산 넘어 반대편에 자리하고 때문에 아쉽게도 고려 대상에서 제외.
1코스는 나무데크 계단으로 시작된다. 계단이 끝날 때 즈음, 이내 아담한 오솔길을 만나게 되고 그 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뜻하지 않은 선택의 장소에 도착하게 된다. 완경사 2.8㎞, 급경사 2.2㎞ 안내판이 세워진 곳. 일단 안내판이 눈앞에 나타나면 열이면 열 갈등 모드에 돌입한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따를 필요 없이 자신의 수준에 맞는 코스를 정하는 게 중요하다. 3㎞ 남짓한 짧은 구간이지만 선택(?)에 따라 힘든 고비를 만날 수도 있으니 만만하게 봤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다. 오른쪽 급경사로 방향을 잡았는데 몇 걸음 안 떼고 후회가 밀려온다면 곧바로 또 다른 선택이 기다리고 있으니 안심해도 된다. 100m 정도를 더 올라가면 다시 왼쪽과 오른쪽으로 갈리는 길이 한 번 더 등장하는데 이때 오른쪽 발구덕, 민둥산 방향으로 갈아타면 된다. 그러면 완만하게 올라가다 능전에서 시작하는 2코스 길과 만나면서 민둥산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특히 증산 방향에서 민둥산에 오르는 길은 모든 코스 중간에 쉼터가 있으니 다른 구간에 비해 비교적 수월하게 산행을 할 수 있다.
# 능전마을에서 출발=2코스 초입인 능전마을을 들머리로 정했다. 장맛비로 물러질 대로 물러진 산길이 걱정돼 내린 결정이다. 2코스는 포장이 된 임도가 정상 턱밑까지 한참을 이어지니 적어도 미끌러질 걱정은 없겠다 싶었다. 증산초교 주차장에서 도로를 타고 4㎞ 정도를 올라가면 능전마을 주차장이 나오는데 그 앞이 민둥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2코스 등산로 입구다. 등산화를 단단히 고쳐 신고는 코스 초입에 있는 차단기 넘어 산속 길에 올라타 본다. 흙길이 아닌 딱딱한 도로를 따라가는 산행은 사실 그리 달갑지 않다. 스폰지 케이크같이 폭신한 땅을 밟을 때 느낌이 더 좋은 것도 있지만 여름날이면 고스란히 튕겨 올라오는 열기가 영 성가신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비가 그치고 날은 갰지만 뜨거운 햇살이 낮게 깔린 구름 뒤에 숨어선지 산속은 한없이 맑고 상쾌한 느낌이다. 눈은 자연스레 주변 풍경으로 향한다. 도로 양옆에 도열한 나무와 풀들은 물기를 한껏 머금고는 금방이라도 녹색의 물감들을 밖으로 터트려 버릴 기세다. 산에 오르는 중간에 보이는 밭에는 무얼 심었는지 가르마를 탄 것 같은 고랑들이 줄을 맞춰 쭉 이어져 있고, 걸어온 길과 그 뒤에 병풍처럼 드리워진 풍경의 컬래버레이션은 그저 슬쩍 찍어도 풍경화다. 얼마쯤 걸었을까. 멀리 반가운 쉼터가 보인다. 내친김에 쉬어 가기로 했다. 그런데 왼편으로 길 하나가 길게 뚫려 있다. 1코스 두 번째 선택에서 완경사 코스로 방향을 잡았을 때 이어져 오는 길이다. “내려갈 때는 저리로 가야겠다.” 몇 마디 중얼거리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 가을 아닌 여름에 올라도 아름답다=이정표를 보니 민둥산 정상까지 900m 남았다. 또다시 노란 임도 차단기를 넘었다. 그런데 꽤나 너른 바닥이 온통 자잘한 돌멩이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발길을 옮길 때마다 쿡쿡하고 발바닥을 찌른다. 정말 끝없이 이어진다. 한참을 올라 모퉁이를 지나면 좀 더 높아진 경사의 오르막이 기다리고 있고 정상처럼 보이는 곳에 다다르면 또 다른 길이 불쑥 생겨나 하늘을 향해 내달린다. 지그재그로 끝도 없이 이어지는 길이다. 이렇게 올라가다가는 구름이라도 만나겠다는 말도 안 되는 절정의 투덜거림이 입 밖으로 새어나올 때 즈음, 길이 평평해지는가 싶더니 또 다른 모퉁이 그리고 그 뒤로 녹색의 초지가 엄청난 스케일로 펼쳐진다.
“와~ 드디어 다 왔네요. 그래도 생각보다 괜찮네요.” 사실 가을이 아닌 민둥산의 모습은 본 기억이 거의 없어서 살짝 걱정을 하던 차에 이런 광경을 보니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다. 그래도 정상을 가려면 다시 오르막길을 올라야 한다. 또 다른 깔딱고개라고 할까. 꽤나 힘들다. 나무 한 그루가 올라와 있는 곳이 정상이라고 생각하고 막판 스퍼트. 그런데 그 뒤로 작은 동산 같은 게 더 있다. “아이고.” 풀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올라가니 이상하게도 아무것도 써 있지 않은 길쭉한 정상석이 반긴다. 올라오면서 정상석의 뒷면을 본 것이다. 바람에 일렁이는 갈색의 억새가 가득한 능선만 보다가 녹색의 기운이 가득한 또 다른 민둥산의 매력 안에 서 있으니 감회가 새롭다. 그래서인지 민둥산 정상의 빨간 우체통은 녹색의 바다에 홀로 서 있는 등대처럼 더욱 또렷하게 보인다.
정선=오석기기자 sgtoh@kw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