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올림픽 트레킹 로드를 가다]“먼 길 오느라 애쓰셨네” 1,500살 주목 어르신이 반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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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명품하늘숲길 바람새코스

◇천연기념물 제433호로 지정돼 보호를 받고 있는 정선 두위봉 주목은 수령이 1,100~1,500살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나무로 알려져 있다. 정선=김남덕기자 ndkim@kwnews.co.kr ◇보기 힘든 기생식물인 수정난풀이 등산로 주변에 피어 있다. ◇조림한 낙엽송 군락지는 이 코스 마지막에 등장해 청량감을 주고 있다.(사진위쪽부터)

정선 두위봉~증산 이어지는 구간

두위봉엔 우리나라 최고령 나무 자생

'아이고' 소리 절로 나는 높고 험한 산

강원도 삶의 현장이자 신앙의 대상물

이번에는 명품하늘숲길 8구간인 '바람새코스'에 접어들 차례다.

굳이 풀이하자면 '바람이 불어오는 모양' 코스라 할 수 있다. 참 예쁜 이름이다.

7구간(두리번코스·본보 지난 6일자 22면 보도) 날머리인 두위봉 정상이 동시에

8구간 들머리이기도 하니, 두위봉에서 내려오는 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코스는 두위봉에서 증산까지다. 그런데 2개의 코스가 있다. 하나는 두위봉을 타고

올라 자뭇골로 내려가는 길이 있고 또 다른 하나는 두위봉을 찍고 올라온 길을

다시 거슬러 내려가 분기점에서 민둥산역으로 내려가는 길이 그것이다.

보통은 자뭇골로 가는 이들이 많지만 우리는 민둥산역 방향으로 가기로 했다.

민둥산역의 옛 이름이 증산역이었고, 정선국유림관리소 직원도 이 길을 알려줬다.

아무튼 아직은 두위봉 정상으로 먼저 올라가는 게 급선무다. 느릿한 발길을 재촉한다.

# 강원도 문화가 된 산=강원도의 산은 그 자체로 삶의 현장이며 신앙의 대상물이 되기도 한다. 백두대간의 준령들은 해발이 1,000m가 넘는 것은 기본이다. 험준한 준령들은 강원도를 오지로 만들기도 하지만 쉽게 사람들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아 그만큼 신비감을 주기도 한다. 높이 치솟은 산을 오르내리며 살아온 우리들의 모습, 그 땀과 한숨의 역사는 문화로 남아 산길 곳곳에 녹아 있다.

고단한 발걸음을 옮긴다. 숨이 거칠어진다. 숨이 목구멍 끝까지 올라오면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난다. 산들은 구름도 쉬어갈 만큼 높다. 강원민요는 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산을 올라가며 나오는 한숨 “아이고”는 강원민요의 근간이다. 음으로 재현하면 '미솔라'나 '미라도'로 표현한다. 강원도 민요는 산을 타며 내쉬는 소리가 음악으로 표현돼 있다. 그래서인지 산 사람들의 투박하고 정제되지 않은 생활을 그대로 보여줘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맛이 있다. 세련되지 않은 강원의 음악은 그래서 자연과 많이 닮아 있다. 강원의 산과 강, 바다, 그리고 나무와 풀은 그 속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고 문화였다. 강원도아리랑, 한오백년, 정선아리랑 등은 자연을 닮은 산 사람들의 이야기다.

# 우리나라 최고령나무 주목=우리나라 사람들은 처음 만나면 나이 혹은 출신지 등 족보를 캐곤 한다. 나이가 한 살이라도 많거나 적으면 금방 형님이나 아우가 된다. 서열 정리는 편하기도 하지만 더 친해지는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유교적인 분위기 아래 조상 대대로 살아오다 보니 이런 습관이 생겨났다.

정선 두위봉엔 우리나라 최고령 나무가 있다. 주목이다. 1,100~1,500살인 나무 3그루가 하늘을 떠받들고 있다. 이 나무는 강릉김씨 시조인 김주원공이 신라 왕권에 밀려 강릉으로 옮겨와 터를 잡은 시기와 비슷하다. 강릉김씨 시조와 동시대를 살아온 나무는 조상님을 뵌 듯 반갑다. 나무에게도 몇 살인가를 묻는 나를 보니 관습이란 것이 무섭구나 생각이 든다.

나무의 나이가 많고 적음이 뭐가 중요하랴. 나이보다는 주목이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면서 어떤 무늬를 만들어 냈는가에 주목해야 한다. 주목은 살아서 천년, 죽어서도 천년을 산다는 나무로 고산지대에 주로 서식한다. 오랫동안 이 땅을 딛고 살아가는 이 주목은 아마도 사람들의 손을 타지 않는 강원도 첩첩산중에 위치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나무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한 감성 그 자체로 산과 더불어 사는 우리 모습이 투영돼 있다.

# 고산 산책을 안내하는 길=10㎞를 넘어서는 두 개의 코스를 이어서 간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능선을 따라가는 동안 안개비가 내려 등산로 주변 식물들이 흠뻑 젖어 있었다. 10분도 되지 않아 등산화와 옷은 물기를 잔뜩 머금었다.

오르락내리락을 수십번 반복하다 보면 두위봉 정상에 다다른다. 시원한 바람 한 올이 뺨 위로 스친다. 막상 정상에서는 철쭉을 볼 수 없어 화사함을 느낄 수는 없지만 멀리 보이는 풍광만큼은 일품이다.

정상에서 다시 온 길을 돌아가 민둥산역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내려오는 길에도 속이 거의 비어 있는 주목들이 등산로 주변에 나와 가는 길을 배웅하고 서 있다. 한참을 내려가도 끝이 보이질 않는다. 이 길로 등산하는 동안 한 사람도 만나질 못했다. 평일인 이유도 있겠지만 그냥 뒷산 등산로로 보기에는 거칠어 사람들에게 익숙하지는 않은 듯 보인다. 조금 전 화절령에서 출발해 본 등산로 합류 직전까지 경험한 자연에 더 가까운 길이 다시 한번 펼쳐지는 기분이다. 길 안내에 인색했던 직전 두리번코스와는 달리 300m를 지날 때마다 꼬박꼬박 안내판이 나타나 갈 길을 일러준다. 하지만 내려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산을 오를 때 천근만근이던 다리가 왜 이리도 솜털처럼 가볍게 느껴지는지. 휘청휘청 그리고 미끌미끌의 연속이다. 서둘러 발길을 옮겼는데도 숲에 일찌감치 어둠이 찾아들었다. 낙엽송이 보인다. 민가가 가까워졌다는 신호다. 앞서 간 일행이 일본잎갈나무 사이로 사라진다. 드디어 평평한 땅 위로 발을 디뎠다. 화절령을 떠난 지 7시간 만이다. 낮의 밝은 기운이 서서히 자취를 감추면서 어스름한 민둥산역 주변 상가들은 저마다 간판에 환한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어느새 산 아래에는 울긋불긋 또 다른 철쭉이 피어 오른다.

정선=김남덕·오석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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