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만에 다시 찾은 만항재 … 매봉산까지 62.7㎞ '코스 최장 구간'
함백산 깔딱고개 넘으며 땀 뻘뻘 … 태백 가운데 위치한 연화산 올라
삼수령 지나 한폭의 그림같은 풍광 자랑하는 '바람의 언덕' 반겨줘
'올림픽아리바우길' 아홉 개 코스를 돌고 돌아 '명품하늘숲길' 위에 올라섰다. 명품하늘숲길 1구간(하늘마중코스)과 2구간(자작나무코스)을 스친 지 어언 1년이다. 그리고 다시 만항재다. 2구간의 마지막, 3구간(한겨레코스)의 시작 지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예쁜 곳이다. 오늘 도전하게 될 3구간은 멀리 매봉산이 도착지점이다. 지도를 보니 한참이다. 코스도 가장 길다. 동부지방산림청에서 알려준 자료를 보니 62.7㎞로 나온다. 꼬박 15리 거리다. 하루에 둘러보는 것은 애초에 포기해야 한다. 일단 만항재 표지석 그늘 안으로 '철푸덕'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식당행. 라면이며 감자떡, 총떡을 시켜 놓고는 사진부장과 심각하게 대책회의. 그리고 결론. “이 길이 제일 경제적이겠는데요.” 어느 산이 됐건 서로 다른 3개의 산은 찍어야 코스를 매조지할 수 있으니 전에 없던 경제관념이 되살아난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의견 일치를 본 함백산 코스로 출발이다.
■함백산-깔딱고개 넘어 시원한 풍경=함백산 정상은 코앞까지 차를 타고 갈 수 있다. 차를 세우면 1㎞ 남짓한 거리를 걸으면 된다. 미리 알았다면 그랬을 거다. 내비게이션에 만항재가 아닌 KBS 송신탑을 찍으면 쉽게 안내해 준다고 한다.
그래도 유유자적 산행이 목적이니 만항재에 차를 세워두고 출발하는 것도 나름 괜찮을 듯하다. 저기 길 아래 화방재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이도 많다고 하니 괜히 마음에 위안(?)이 된다. 아무튼 함백산 정상에 오르는 길은 거리상 그리 어렵지 않다. 공식적으로 나온 등반 시간은 1시간20분 정도다. 그렇다고 아예 쉬운 곳도 아니다. 산불감시초소 옆 돌계단을 타고 부지런히 함백산 품 안에 안긴다. 꽤나 무더운 날씨이지만 군데군데 나무들이 그늘을 내어줘 기분만큼은 상쾌하다. 산길을 타고 한참 걸어올라 가면 너른 공터가 나타나고 이내 돌무더기로 된 함백산 기원단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은 왕이 천제를 지내던 태백산 천제단과 달리 백성들이 하늘에 제를 올리며 소원을 빌던 곳이라고 한다.
멀리 철탑이 보인다.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신호. 땀을 식히고 길 위에 오른다. 하지만 복병이 나타난다. 가파른 경사를 타고 박혀 있는 나무계단. 그리고 또다시 나타나는 돌계단. 여기가 바로 깔딱고개다. 등줄기 땀방울이 발아래로 흘러내릴 때 즈음, 이내 시원한 풍경이 펼쳐진다. 정상이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등산코스는 이곳 정상에서 금대봉으로 가는 코스(4구간·해맞이코스)이지만 우리는 연화산 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연화산-태백시내 한눈에 담고 산행=연화산은 태백시 가운데 위치한 산이다. 시내와 워낙 가깝게 붙어 있다 보니 산 속에서 만난 이정표에 뜬금없이 '여성회관'을 알리는 문구가 나온다. 피식 하고 웃음이 쏟아졌다. 신선하고 재미있다.
연화산 유원지에 도착해 한참을 쉬어 올라간 산 길 들머리에서 발견한 이정표가 잠깐 웃음을 준다. 어느 방향으로 발걸음을 디디든지 3구간 목적지인 매봉산 방향으로 갈 수 있다. 길이 동그랗게 연결된 둘레길로 돼 있기 때문이다. 연화산 유원지에서 시작해 한 바퀴 도는 거리가 약 12.5㎞라고 하니 절반인 6㎞ 정도면 연화산을 빠져나갈 수 있겠다 생각했다. 비록 같은 거리이지만 이 길로 갈까, 저 길로 갈까 '경제성'을 갖고 또 고민을 하고 있는데 사진부장이 낮은 목소리로 “조용”이라고 한다. 길 위에 멧닭 가족을 발견한 것이다. 분명 우리의 인기척이 느껴졌을 텐데 아주 태연하게 한참 산보를 하고는 유유히 숲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결정을 내리고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시내 쪽, 여성회관 쪽 방향으로 방향을 틀었다. 힘이 들거나, 배가 고프거나 여차하면 시내로 내려갈 요량이었다. 얼마를 걸었을까. 눈 안에 웬 정자 하나가 들어온다. 연화정 전망대다. 태백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멀리 태백산 그리고 지나쳐 온 함백산 그 능선을 그래로 타고 금대봉이 보인다. 조금 더 오른쪽에는 목적지 매봉산이 흐릿하게 등장한다. 부지런히 가야겠다. 둘레길 반대편은 생략한 채 38번 국도상에 있는 송이재에 다다른다. 커다란 송이재 표지석. 이제 드디어 3구간의 마지막에 접어든다.
■매봉산-발품으로 찾아낸 비경 '바람의 언덕'=도로에서 다시 시작하는 매봉산으로 향하는 여정도 그리 녹록지 않다. 일단 대조봉을 향해 가야 한다. 가파른 산길을 땀을 흘려 가며 대조봉에 올라가면 한쪽으로는 연화산이, 한쪽으로는 매봉산이 가깝게 다가온다. 다시 임도를 타고 한참을 따라가다 보면 대박등과 삼각점이 있고 매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눈앞에 펼쳐진다. 삼수령을 지나 '바람의 언덕'으로 향한다. 아마도 3구간 최고의 경치가 아닐까 싶다. 힘들었던 여정을 말끔히 씻을 만큼의 풍경이다.
바람의 언덕에 접어드니 들어서는 입구를 할아버지 한 분이 지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농사철에 이곳 경치를 보러오는 사람이 많다 보니 차량 통제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서 왔는지 땀을 뻘뻘 흘리고 들어오는 우리의 모습을 보더니 할아버지는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다른 관광객들과 달리 아래부터 걸어 들어오는 모습이 낯설었던 모양이다. 취재차 왔다고 하니 미소를 지으며 “별로 볼 것도 없는데…”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할아버지와 가벼운 인사를 하고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점점 모습을 드러내는 풍경은 정말 엄청났다. 암반데기의 그것과 닮아 있다. 언덕 위의 풍력발전기 아래 배추를 심고 있는 어르신들의 모습까지 더해져 한 폭의 그림이다. “우와~” 사진부장과 이 단어만 족히 열 번은 내뱉은 것 같다. “외국의 어느 풍경보다도 아름다운 풍경이야.” 사진부장은 연신 셔터를 누르며 감탄사 퍼레이드다. 나에게도 동의를 구하는 눈빛. “말해 뭐해요. 최곱니다.” '철푸덕' 자리를 잡고 앉아 답했다. 다리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피로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오석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