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올림픽 트레킹 로드를 가다]산 넘고 강을 거슬러 돌고돌아 다다른 바닷가 쿵쾅쿵쾅, 가슴이 파도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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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올림픽 아리바우길 9코스

정선 산골에서 시작한 트레킹이 평창을 거쳐 산과 강을 건너 강릉 강문 바다에 도착했다. 동해에 태양이 솔숲 사이로 떠오르고 있다(사진 맨 위). 강릉=김남덕기자

올림픽 아리바우길 마지막 코스 17.7㎞

유일하게 산과 바다로 이어지는 길

오죽헌 지나 '신사임당길' 불리기도

소나무 병풍처럼 둘러쳐진 '선교장'

경포대서 내려다보는 경포호도 일품

허난설헌 생가터 지나 강문해변 종착점

올림픽 아리바우길 마지막 코스에 접어든다.

지난해 여름 정선 5일장터를 출발한 길고 길었던 여정의 끄트머리다.

아직 걸어야 할 많은 길이 더 남아 있지만 '올림픽 아리바우길'이라는 이름을 쓰는 마지막 코스이니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강릉에 접어들어 여러 길의 갈래를 넘나드는 동안 멀리 곁눈질로만 만날 수 있던 동해 바다를 내 눈앞에서 영접할 수 있으니,그 기분… 묘하다. 강원도에 살면서 동해 바다가 어디 처음이겠는가.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강릉에 머물며 하루가 멀다 하고 보던 곳이 동해 바다다.

하지만 산을 넘고 강을 거슬러 오르고 길을 돌아 닿는 느낌은 또 다르리라. 출발부터 한쪽 가슴이 주책 없이 “쿵쾅 쿵쾅” 요동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일단 감상에 젖어 출발!

유일하게 산과 바다로 이어지는 길이다. 17.7㎞. 정선 나전역에서 출발하는 2코스(20.5㎞) 다음으로 긴 코스. 바우길 11구간과 겹친다. 코스 중간에 오죽헌이 있어서인지 신사임당길로도 불린다. 부지런히 길 위에 오른다.

#마지막 길을 시작하다=강릉시 성산면 위촌리에 자리한 송양초교를 찍고 마지막 길에 나선다. 정미소를 왼편으로 끼고 삼거리 좌측으로 나 있는 등산로에 접어든다. 급하지 않은 경사가 하늘 위로 주욱 이어진다. 야트막한 산을 가뿐하게 넘어서면 만나는 육교. 이 육교를 건너 또 도로를 가로질러야 한다. 강릉의 아리바우길 코스는 은근히 도로를 지나치는 구간이 많다. 만날 때마다 맥이 끊기는 기분. 하지만 이 짧은 구간을 지나면 다시 소나무 숲길 안에 안길 수 있다. 이내 강줄기(위촌천)가 보인다. 강을 오른쪽 옆구리에 끼고 걷는 기분 그리 나쁘지 않다. 미세먼지 탓에 목 어딘가가 텁텁했는데 기분 탓인지 상쾌함이 느껴진다.

이러구러 걷다 보니 꽤나 너른 저수지가 눈 안으로 입장한다. 죽헌저수지다. 평일인데도 따까운 봄볕을 등에 한가득 지고 세월 낚기에 여념 없는 강태공들의 모습도 보인다. 설명을 들으니 이곳이 배스 낚시터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유유자적하는 모습이 부럽기만 하다. 우리도 유유자적 모드. 한참을 앉아 땀을 훔치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갈 길이 멀기 때문에 발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반갑게도 얼마 안 가 산길을 벗어나 마을로 접어들 수 있었다. 길어서 걱정했던 코스의 중간지점을 지나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지척에 오죽헌이 있으니 그 다음부터는 관광 모드로 걸으면 된다.

# 오죽헌에서 한숨 쉬고 출발=머리 위로 교각을 지나쳐 좌회전. 오죽헌(烏竹軒·보물 제165호)이 보인다. 담장을 타고 한참을 걸어 오죽헌 정문에 다다른다.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태어난 곳. 고택의 아름다움과 고즈넉함을 느낄 수 있는 곳. 이미 몇 차례 와보기도 했고 그냥 지나치려는 찰나 봄나들이 온 사람들의 웃음이 담장 넘어 한가득 찰랑거린다. 그 모습, 그 소리를 보고 듣고 있자니 그냥 지나치기엔 좀 억울(?)한 느낌이 든다.

“우리도 여기서 한숨 돌리죠.” 꼬꼬마 유치원생 한무리가 선생님 구령에 맞춰 줄지어 지나가고 해설사의 설명에 눈과 귀를 쫑긋한 사람들의 모습이 뒤섞여 장터 같은 분주함이다. 오죽헌을 나와 그 앞으로 쭉 걷다 보면 도로를 건너 키 작은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이 나온다. 이 길을 타야 그 다음 포인트인 선교장(船橋莊)에 다다를 수 있다. 소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선교장은 국내 전통가옥 중에서 가장 큰 곳으로 세종대왕의 둘째 형 효령대군의 11대손 이내번(1708~1781년)에 의해 지어져 300년 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선교장이 있는 곳을 배다리(船橋)마을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경포호가 넓었던 시절 배를 타고 호수 동쪽에 있는 초당이나 강문을 다닐 때 내리기 편하도록 다리가 있었고 그 다리 이름이 마을명으로 굳어진 것이다. 선교장이라는 명칭도 배다리라는 지명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한다.

# 길 위에서 만난 인연을 떠올린다=이제 다시 산길로 접어들 차례다. 여기서 조심. 표시가 없거나 헷갈리게 돼 있어 잘못하면 한참을 돌아 걸을 수 있다. 하지만 빨간색, 흰색이 겹쳐진 리본이 있는 곳을 따라 걸으면 틀림없다. 김시습기념관을 스치고 좌측 마을길로 접어들어야 코스를 제대로 타는 것이다.

그리 크지 않은 마을이 끝날 때쯤 작은 평야처럼 논들이 넓게 펼쳐지는데 그 초입에서 바로 좌회전해 조금을 더 걸은 다음 산길에 들어서면 된다. 강릉 산길의 트레이드 마크 소나무 길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그리 심한 경사는 아니지만 오르막이어서 코스의 마지막 지점쯤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살짝 힘들 수도 있다. 조금 더 걸으면 돌로 깎은 커다른 공기알 몇 개를 얹혀 놓은 것 같은 시루봉에 오르게 된다. 말이 봉우리지, 마을 뒷산 정도 높이이니 안심해도 된다. 그렇게 걷다 보면 다시 또 다른 마을을 만나게 되고 그곳을 거쳐 산길 700~800m를 오르면 마침내 경포대(鏡浦臺)에 다다르게 된다. 경포호의 모습을 내려다 보는 느낌이 일품이다. 지금이야 아래로 도로가 나 있지만 그 옛날에는 바로 코앞까지 물이 찰랑이는 호수였다고 하니 지금보다 몇 곱절은 더 장관이 펼쳐졌을게다. 수많은 관광객이 경포대 안에 저마다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아 풍경 감상에 여념이 없다. 때마침 도착한 봄바람은 한없이 시원하기만 하다.

경포대를 뒤로하고 경포호 주변을 걷기 시작했다. 반원을 그리며 걷다 허난설헌 생가터 이정표를 보고 코스 이탈. 도착한 허난설헌 생가터에는 벚꽃이 비처럼 내리고 있었다. 흠뻑 맞은 벚꽃비를 품고 마침내 다다른 강문해변, 경포해변. 올림픽 아리바우길 131.7㎞의 마지막 종착점. 솟대다리에 올라 걸어온 길을 되돌아 본다. 산과 강, 마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닿은 바다, 그 안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을 생각하며….

강릉=오석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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