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올림픽 트레킹 로드를 가다]뭉게구름 떠받치듯 솟은 키다리나무 동화 속 그림같은 풍경이 이런 모습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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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명품하늘숲길 고생대코스(하)

◇육백산 코스는 임도를 따라서 등산로가 이어진다. 간벌한 나무 뒤로 펼쳐진 풍광이 동화의 나라에 들어선 듯한 착각을 만든다. 삼척=김남덕기자

육백산 정상까지 8㎞ … 청량한 바람 솔솔

이색 소나무·수십여종 야생화도 볼거리

작은 나무·풀밭에 듬성듬성 큰 나무 솟아

흡사 외계행성 같은 낯선 풍경 연신 감탄

이제 육백산 본진에 들어서야 한다. 고생대코스의 하이라이트. 그런데 여간해선 입구 찾기가 힘들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에 도로주소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도상로 850'을 찍고 10~20m 정도만 더 발품을 팔면 틀림없이 입구에 다다를 수 있다. 구사리 방향에서 구불구불 차도를 밟고 거슬러 오른다. 이러구러 가다 보면 오른편으로 임도 시작점이 보이는데 이곳이 바로 육백산 정상에 오를 수 있는 들머리다. 등산 앱이나 등산지도를 보면 강원대 도계캠퍼스에서 시작되는 구간을 등산로로 표시하는 경우가 많지만 '명품하늘숲길'의 진수를 맛보려면 신리 쪽 임도 구간에서 출발하는 것이 정답일 듯하다. 일단 한번 걸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 아스팔트 벗어나 녹색의 바다로=제법 넓어 보이는 입구 공터에 차를 세워 놓고 지도를 펼쳐 든다. 육백산 정상까지 가는 데만 8㎞. 왕복하면 16㎞나 되는 꽤나 긴 코스다. 산속에 들어서면 십중팔구 나무 터널들이 따가운 햇볕을 막아주겠지만 그늘하나 없는 휑한 입구에서 서성이려고 하니 벌써부터 등줄기에 땀이 한가득이다. 입구 오른쪽에는 파란색 컨테이너로 지은 산불감시초소가, 왼쪽에는 임도를 내면서 만든 '육백산국유림도'라고 쓰인 육중한 표지석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다. 그 사이 노란 임도 차단기를 넘어 녹색의 바다에 입수. …하려고 했는데 그러기에는 길이 조금 넓다. 나무들이 얼기설기 이어진 그늘을 머리에 이고 유유자적 걷는 기대는 트레킹 초반에는 일단은 포기. 그래도 뜨끈뜨끈한 아스팔트를 벗어나 흙을 밟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은 좋다. 멀리 하늘을 향해 이어지는 길을 타고 넘어오는 바람은 도시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청량하다. 길을 걷다 보니 이제 조금씩 그늘이 모이기 시작한다. 서넛은 족히 들어갈 정도의 그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주변을 둘러본다. 길 양옆으로 숱 많은 아이 머리처럼 나무와 풀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려고 하니 코앞에서 멧닭 한 마리가 걷는 것이 보인다. 이놈 분명히 인기척을 느꼈을 텐데 아랑곳하지 않고 머리를 이리저리 흔들며 유유자적이다. 더 다가가려고 하니 그제서야 길을 앞질러 '푸드득' 날아가 버린다.

#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풍경들=얼마나 걸었을까. 나무들이 어깨를 맞대고 계속해서 이어지다 보니 나무에 걸려 길 밖 풍경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나무들이 저 좋은 경치를 다 막고 있네요.” 모르게 푸념 한 자락이 흘러나온다. “나는 오히려 이게 더 좋은 것 같은데. 이쪽으로 와 봐” 사진부장의 한마디에 일단 발걸음을 멈추고 길 밖으로 한껏 몸을 내밀어 풍경을 바라본다. 그래도 여전히 나뭇가지와 잎사귀들이 풍경에 더부살이하며 얹혀 있는데 그래도 나름 운치는 있어 보인다. 입구에서 출발해 3㎞되는 지점에 다다르면 직진과 우회전을 결정해야 하는 큰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는 그대로 직진. 길은 그다지 큰 변화 없이 계속해서 완만한 오르막을 유지한다. 길이 따분해지려는 찰나, 길 한가운데에서도 제법 밖의 경치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길옆으로 키 작은 나무가 이어지는 구간에서는 그림 같은 풍경이 커튼을 열 듯 스르륵하고 펼쳐지기도 한다. 멀리 보이는 산의 능선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중첩되는 모습은 마치 먹의 농담(濃淡)을 달리하며 원근감을 살리는 수묵화처럼 묘한 매력을 느끼게 한다. 한창 사진을 찍고 있으려니 멀리서 '우와'하는 탄성이 들려온다. 무슨 일인가 싶어 걸음을 재촉하는데 순간 특이한 경치가 눈 안으로 입장한다. 순간 “뭐지?”하고 혼잣말을 툭 내뱉을 정도다. 여지껏 한번도 본 적 없는 풍경인데 분위기가 묘하다.

# 외계행성? 동화의 나라? 입장=임도 입구에서 출발해 약 5.3㎞ 구간('산길샘' 앱 기준)에서 만나는 이 풍경은 1년여간 이어진 그동안의 무수한 트레킹 여정에서도 한번도 만난 적 없는 그런 풍경이다. 첫 느낌은 지구의 것이 아닌 것 같은, 마치 외계행성에 떨어진 기분이 들게 하는 곳이다. 동화의 나라가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그곳에 있는 나무들은 엄청 곧고 엄청 길게 하늘을 향해 뻗어 있어 마치 흰 구름을 떠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솜사탕처럼. 그런데 올라오면서 본 빼곡한 나무들과 달리 이곳 나무들은 엉성하게 듬성듬성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나무 아래쪽은 작은 나무들과 풀들로 수북한데, 그런 풍경 뒤로 보이는 산 능선이나 파란 하늘, 하얀구름의 어울림이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낸 재료들이다. 처음 보는 재미있는 풍경들을 눈 안 가득, 그리고 카메라 가득 담고서는 다시 길 위에 오른다. 이내 '낙엽송 군락'에 도착한다. 두 번째 갈림길이다. 왼편 산아래에서 올라오는 길이 바로 강원대 도계캠퍼스에서 출발하는 등산로다. 일단 직진해야 하는 임도를 버리고 산길로 우회전. 그래야 육백산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 여기서 산으로 이어지는 나무계단을 타고 그 안에 푹 안기면 작은 오솔길이 이어지는데 한결 더 시원해진 느낌이다. 하늘로 솟은 나무들이 제대로 된 그늘까지 만들어준다. 육백산 정상은 숲이 빙 둘러쳐져 있어 풍경을 볼 수 없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는 곧바로 하산. 터덜터덜 내려오는 길. 바위에 딱 달라붙어 자라던 스파이더(?) 소나무, 이름 모를 수집 종의 들꽃들이 또다른 볼거리로 다가온다.

삼척=오석기기자 sgtoh@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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