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비재 '아라리고갯길' 불려 … 총거리 16~17㎞ 달해
진한 녹색 빛 품은 나무·풀 만화경처럼 끝없이 이어져
재난급 무더위에도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한 청량감
새비재 다다르자 고랭지 배추밭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1년 전 '올림픽 트레킹 로드' 시리즈를 시작한 1구간(하늘마중코스)에 다시 섰다. 전체 코스가 무려 40㎞를 넘어서기 때문에 마운틴콘도에서 출발해 하이원C.C에 이르는 구간 중 '화절령→새비재'구간(본보 2017년 6월16일자 20면 보도)은 생략했었다. 오늘(지난 1일) 걸을 길이 바로 한차례 포기했던 화절령 출발, 새비재 도착 구간. 7구간(두리번코스)을 타기 위해 왔던 화절령으로 다시 향한다. 꼬불꼬불한 차도를 타고 오르다 도로 끝에서 우회전. 지난번에 갔던 같은 코스다. 다시 만난 비포장도로.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아본다. 차가 울퉁 불퉁한 오르막길을 제대로 오르지 못하고 헐떡인다. 밀어도 보고 돌을 괴어 놓아 봐도 바닥은 계속해서 '기긱~ 기긱~' 긁히는 난감한 상황. 일단 빠른 길은 포기하고 반대편(마운틴콘도 방향)으로 차를 다시 몰아본다. 차가 지날 수 있는 임도가 끊길 수도 있다는 불안한 마음이 들 때쯤, 다행히 화절령으로 빠지는 갈림길이 보인다. 이제 여기서 1㎞ 정도를 더 가면 화절령에 닿을 수 있다.
# '아라리고갯길'로 출발
화절령에 다다르자 네 갈림길이 교차하는 너른 공터가 보인다. 공터 한쪽 그늘에 차를 세우고 먼길 떠날 채비를 한다. 이번 코스가 16~17㎞ 정도이니, 절대 만만한 거리는 아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는 더더욱 그렇다. 심호흡 한번 크게 하고 출발한다. 이내 이번 코스의 날머리인 새비재의 다른 이름이 '아라리고갯길'이라고 쓰여 있는 이정표가 보인다. 순간 영화 '서편제'에서 주인공 세 사람이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청산도(완도군 청산면)의 돌담길을 걷던 장면이 떠오른다. 그래선지 이 길에서는 왠지 정선아리랑을 불러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일단 코스 초입에 놓여 있는 노란 임도차단기를 넘어서야 제대로 된 걷기 시작이다. 차단기 오른쪽 산 속 방향으로는 '주목군락지·두위봉' 정상 방향 표시도 보인다. 지난번 산행에서 끝내 찾지 못한 7구간의 정식 들머리다. 뭔가 어려운 문제 하나가 풀린 기분이다. 발걸음을 재촉한다. 아까 봤던 거뭇했던 땅은 사라지고 누런 황톳빛 길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자잘한 돌들이 빼곡하게 채워진 회색빛 길도 모습을 드러낸다. 돌들이 서로 부대끼며 사각사각 소리를 낸다. 길 양옆으로는 묻어날 듯 진한 녹색 빛을 품은 나무와 풀들도 만화경처럼 끝없이 이어져 나온다. 시원한 소리와 색의 향연. 여기에 어우러지려는 듯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 바람은 이 더위에도 더 이상 뜨끈하지도 눅눅하지도 않다. 기분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진짜 시원한 바람이다.
# 파란 하늘 더하기
여름 산행의 묘미다. 지글지글 끓는 검은 아스팔트의 섬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상대적인 시원함. 느낌으로는 도심보다 4~5도는 족히 낮은 기온인 듯하다. 화절령에서 2㎞ 남짓 걸어 도착한 지점에 첫번째 쉼 포인트가 나온다. 풍경을 가로막던 나무들이 점점 몸을 낮추고 오른쪽으로 굽어지는 길이 보이는가 싶더니 그 앞쪽으로 파란 하늘이 뻥 뚫려있다. 구름은 군데군데 휘핑크림 얹어 놓은 것 같이, 장난처럼 낮게 떠올라 있다. 길을 따르지 않고 그대로 걸어 나가면 구름이 손에 잡힐 것 같은 그런 높이. 멀리 희미하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산릉선들은 하늘 색이 묻었는지 녹색에서 점차 파란 색으로 흐릿하게 변하며 동행이 되어 우리를 따라온다. 말 그대로 명품 뷰(View)를 가진 하늘 숲길이 여길 두고 하는 소리인 것 같다. 어느 누구의 제안 없이 자동으로 휴식 시간이다. 사진을 찍으러 여기 저기 흩어졌기 때문. 이런 풍경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경치에 취해 서성이며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그런데 고개를 돌려 돌아보니 여태 등지고 걸어 온 뒤쪽 풍경도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 기대하지 않은 풍경의 등장
조금 전에 눈길을 사로잡은 풍경들이 이번 코스 가장 높은 지점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이제 완만한 내리막이 이어진다는 뜻이다. 아름다운 풍경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진다. 발걸음을 뗄 때 마다 아름다운 장면이 이어진다. 7㎞ 정도 걷다보면 이정표 없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오른쪽 길을 택하면 된다. 하늘을 찌를 듯한 나무들을 호위병 처럼 거느리고 이러구러 걷다보면 이상한 풍경을 만나게 된다. 보통의 나무는 하늘을 향해 곧게 자라지만 여기 나무들은 산의 경사를 따라 엉거주춤 기우뚱이다. 조금은 이상한 광경을 보며 조금 더 걸으면 길을 벗어나 오른쪽 방향으로 작고 나즈막한 언덕, 그리고 그리로 향하는 작은 오솔길을 만난다. 하늘을 향해 나 있는 길. 피곤함도 잊은 채 단숨에 오른다. 그런데 앞길을 가로 막는 7그루의 나무. 초원 위에 그냥 이놈들만 덩그러니 서 있다. 재미있는 모습이다. 마치 하늘길을 지키고 있는 수문장이라도 된 것 같은 기개(?)까지 느껴진다. 예쁜 장면들이 말 그대로 계륵(鷄肋)으로 펼쳐진다. 구간 마지막 이정표 발견. 새비재까지 500m. 이내 “우와~” 쏟아지는 탄성. 새비재에 도착하자마자 고랭지 배추밭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이런 절경이 따로 없다. 여기 정선 새비재의 모습은 그대로 감동이다. 피로가 단번에 풀리는 순간이다.
정선=오석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