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문화재로 보는 우리 역사]반왕건적 반대파 교화 내용 고려 태조 초기의 정치 담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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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진공대사 비문

△제작연도=고려 940년

△크기=36.2ⅹ24.2㎝

△재질=지(紙)

원주 흥법사터에 있는 신라 말 고려 초의 선사 진공대사 충담(忠湛)의 비문을 탁본한 것이다. 진공대사는 후삼국시대의 선사이며, 신라 귀족가문 출신으로 중국에 유학하였으며, 태조에게 귀의한 선종 승려다. 921년(태조 4년) 3월께 왕사로 임명되는데, 왕건은 원주의 흥법사를 중수하고 그를 머물게 했다. 당시 원주지역은 남한강변의 요충지로 영월 세달사 출신 궁예의 세력권이어서 한동안 안정되지 못했다.

고려 태조가 유일하게 승려 비문을 찬술한 진공대사 비문(사진)에는 왕사로 책봉된 후 그의 가르침을 받지 않은 자들은 문도들에게 배척돼 곳곳의 사원에 머물지도 못하고 대화도 하지 못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국왕의 원조 아래 반왕건적인 성향의 반대 세력들을 교화시키고, 왕사로서의 권한으로 승려들을 장악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는 왕사와 국사 사이에 서열화가 뚜렷하지 않았다. 이후 광종 때 왕사였던 화엄종의 탄문(坦文·900~975년)이 광종 말년인 975년(광종 26년)에 국사로 책봉돼, 왕사가 국사로 승진하는 절차가 제도화돼 갔다.

흥법사 인근 안창리 유적에서는 강원도 최대 규모의 기와 가마 유적 56기가 확인됐으며, 진공대사 충담의 비석은 고려 초 비의 특징과 고려 태조 초기의 정치 동향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최영재기자 yj5000@kwnews.co.kr 자료제공=국립춘천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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