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문화재로 보는 우리 역사]신앙이 신실하고 고집스럽던 범일국사의 모습과 꼭 닮아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강원일보·국립춘천박물관 /

사진=국립춘천박물관

51. 굴산사터 얼굴무늬 기와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에는 굴산사지가 있다.

굴산사터에서 발견된 얼굴무늬 기와는 강렬한 인상을 준다.

강릉 굴산사지는 신라 범일스님이 주석하던 절로, 선종의 중요 사찰 중에 하나였다.

한 처녀가 석천에서 태양의 기운을 받은 물을 마시고 출산 후 아이를 몰래 버렸으나 밤마다 학이 품어 살리는 것을 보고 다시 데려다 키웠는데 후일 범일국사가 됐다는 탄생 설화가 있는 곳이다.

사굴산파는 범일을 개조(開祖)로, 굴산사를 중심도량인 선문(禪門)으로 해 선교활동을 활발하게 펼쳤고, 영동지방 전역으로 확장됐다.

신라 하대에는 귀족불교로서 성격이 강했던 교종(敎宗)의 복잡한 교리를 벗어나 참선으로 마음속에 있는 불성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는 선종이 유행했다. 더욱이 범일의 선학이념(禪學理念)은 그가 입적한 이후 고려시대에도 계속 이어져 전국적으로 발전·확대돼 갔으며, 오늘날 불교의 정맥(正脈)이라 할 조계종으로 이어지고 있다. 굴산사를 중심도량으로 형성된 사굴산파는 영동지방 지방세력의 사상적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범일은 오늘날 국사성황신으로 추앙을 받고 있다. 그런데 어떤 과정을 거쳐 실존 인물인 범일이 국사성황신이 됐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다.

3명의 신라 왕이 그를 국사로 모시려 노력했으나 범일스님은 모두 사양하고 굴산사에서 입적했다.

고집스럽고 신앙이 신실했던 한 선승의 모습, 이 기와의 얼굴이 혹시 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최영재기자 yj5000@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강원의 역사展

이코노미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