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생물이야기]새신랑 발바닥 때리기<1050>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온동네 사람들 모여 신랑 맞이

시끌벅적했던 옛 풍경 그리워

또 관용구로 '발바닥에 불이 나다'란 부리나케 여기저기 돌아다님을 비꼬아 이른 말이고, '족장(足掌)을 때리다'란 혼례 후 신랑의 발바닥(장족·掌足)을 방망이로 때림을 뜻한다. 동상례(東床禮·東廂禮)란 혼례가 끝난 뒤에 친구들이나 친척들이 신랑을 짓궂게 다루는 풍속(風俗)을 말한다.

신랑을 골탕 먹이는 것을 '신랑 다루어 먹기'라거나 '장가 턱'이라고 하는데 중국 진(晉)나라 명필인 왕희지(王羲之)가 장가를 들 무렵 그의 장인 될 사람이 그를 자기 집 동상(東廂·동쪽의 건물)에 한 달포 두고 행동거지(行動擧止)를 살핀 뒤 사위를 삼았다고 하는 고사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오늘 속절없이 새신랑이 넋이 빠지고 사뭇 골치깨나 썩게 생겼다. 내 어릴 적에 동네가 시끌벅적거리는 신랑 다루기를 자주 보아 기억이 생생하다.

마을로 장가온 신랑을 에워싼 형들이 유식한 티를 내며 한시(漢詩) 한 구절을 떡하니 제시하고는 신랑더러 거기에 알맞은 대구(對句)를 지으라고 내민다. 신랑이 대구 못 하면 무식하다고 빈정거려 놀리고, 나긋한 대구를 지어도 능청스럽게 졸작이라고 트집을 잡아 신랑을 얄궂게 골탕 먹인다. 또 술과 음식의 금액을 적은 종이쪽지(단자·單子)를 신랑에게 건네줘 서둘러 그것을 처가에서 받아 내오라고 언죽번죽 욱대긴다. 지친 신랑에겐 '세게 더 치라'는 새된 소리가 섬뜩하게 들리는 판이다. 신랑을 거꾸로 매달고, 장족을 다듬이방망이나 몽둥이(목봉·木棒)로 연신 거칠게 때리면서 닦달할라치면 의연(毅然)했던 신랑이 기어이 당해내기 버겁다 싶어 짜증 섞인 소리로 '아야, 아야, 장모님… '하고 비명을 지른다.

신부 집에서는 주눅 들어 쩔쩔 매는 신랑을 긍휼(矜恤)이 여겨 득달같이 성찬(盛饌)으로 청년들을 대접한다. '사위는 백년 손(백년지객·百年之客)'이라 했겠다. 이는 신랑에게 무척 곤욕스러운 고통을 주지만 경사스러운 날을 축하하는 정겨운 행사였던 것. 이런 고유문화들이 소리 소문 없이 송두리째 사라지는 것이 무척이나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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