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일 오전 홍천군 서면 모곡1리 산78-1번지에서 열린 산불희생자 제36주기 위령제 및 추모식.
고(故) 장경오씨의 딸 장은영(37)씨가 아버지의 묘 앞에서 술을 올렸다. 장 씨는 생후 10개월인 갓난 아기 때 아버지를 잃었다. 당시 서른 살이었던 아버지는 1989년 3월 19일 오후 1시 20분께 숫산에서 발생한 산불을 끄기 위해 동네 청년들과 나섰다가 불길에 휩싸여 숨졌다. 차량 15대, 헬기 1대가 동원됐고 산불은 5시간만에 진화됐다. 장 씨를 비롯해 신봉근·공용석·여문옥·강재희·홍석진씨 등 모두 6명이 희생됐다. 고(故) 홍석진씨는 군에서 제대한 직후 23세의 나이로 숨졌다. 이들의 묘 6기는 나란히 있었다. 군은 1990년부터 매년 위령제를 봉행하고 있다.
장은영씨는 “산불 원인이 영농 부산물 소각 중 발생한 불씨라고 들었다”며 “작은 부주의에서 시작된 산불이 다시는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추모식에는 신영재 군수, 김숙자 홍천소방서장, 한덕희 서면 이장협의회장, 윤석영 서면 노인회장 등 주민들과 유가족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희생자 6명 중 4명은 의용소방대원이었던 만큼 조덕연 홍천의용소방대연합회장을 비롯한 대원들도 함께 했다. 이날은 의용소방대의 날이기도 했다.
특히 고인들과 함께 산불 진화에 나섰다가 유일하게 살아 남은 임만원(80)씨도 참석했다. 임 씨는 다리부터 얼굴까지 전신 2도 화상을 입고 피부 이식 수술 등을 받았다. 일평생 손가락도 제대로 펼 수 없었다.
임 씨는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었고, 곡괭이만 들고 산불을 끄기 위해 나섰다”며 “나이 들수록 산불 당시 상황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신경 안정제를 복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불의 상처는 몸과 마음에 모두 깊게 남아 있었다.
신영재 군수는 추모사를 통해 “소중한 희생을 기리는 유일한 길은 산불 예방”이라며 “기후 변화로 산불 위험이 커진 가운데 아픈 역사를 잊지 않으며 재난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홍천=신하림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