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심 흉흉 마을공동체 파괴 위기
간이상수도 바닥 … 제한 급수
최악의 가뭄은 시골 마을을 송두리째 삼키고 있었다. 농작물 등 경제적 손실뿐만이 아니었다. 주민들간 물 분쟁에 민심까지 흉흉해지는 등 농촌을 지탱하던 끈끈한 마을 공동체마저 파괴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11일 오전 춘천시 서면 당림1리 마을의 한 천수답(天水畓)은 마르다 못 해 바닥이 쩍쩍 갈라진 채였다.
논 관리인인 이모(76)씨는 “사람 먹을 물도 없는데, 논에 물 댈 여유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렇지 않아도 이씨는 며칠 전 동네 후배와 가뭄 때문에 말다툼을 벌였다. 후배가 논 앞 개울 웅덩이에서 매일 3~4드럼씩의 물을 퍼 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신의 밭에 물 대는 걸 놔뒀는데 물 부족이 심해져 이를 제재하자, 이를 섭섭히 여긴 마을 후배가 '개울에도 주인이 있느냐'고 서로 실랑이를 벌인 것.
주민들이 먹는 물로 쓰는 마을 상류의 30톤 규모의 간이상수도 물탱크는 이미 바닥을 훤히 드러냈다.
높이 4m의 탱크에 모인 계곡물은 고작 10㎝ 정도였다. 송근배 이장은 “그나마 차량 접근이 가능한 이 물탱크는 2~3일에 한번씩 소방차로 식수 지원을 받지만, 건너편 골짜기의 물탱크는 험준해 제한급수를 하고 있다”고 했다.
다음 달 수확을 앞둔 마늘은 누렇게 말라 비틀어져 줄기를 당기면 손에서 바스락거리며 한 줌 재처럼 사라져갔다. 한금순(여·80)씨는 “팔십 평생 이런 가뭄은 처음”이라고 했다.
이날 밤 예보된 비 소식에 주민들은 “해갈은 안돼도 콩 싹 정도는 틔울 정도의 강우량”이라며 그동안 미뤘던 씨 뿌리기를 서둘렀다. 농촌에 닥친 최악의 가뭄의 실상은 이렇듯 절박했지만, '객관화'를 근거로 한 지자체의 가뭄 피해 통계 보고서는 '농작물 시듦 ○○㏊'로 가뭄만큼이나 메말라 보였다.
류재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