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전 7시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안반데기에 있는 멍에전망대에 올랐다. 동쪽 하늘에 새빨간 여명이 떠오르면서 흰 눈으로 뒤덮인 안반데기는 수줍은 듯 붉게 물들고 있었다.
밤새 하늘을 수놓던 많은 별들은 바람에 실려 날아갔는지 금세 사라져 버렸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강릉시내 가로등 불빛도 하나둘 꺼지고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분주함이 안반데기에 가득하다.
대관령을 넘어 불어오는 칼바람은 볼을 얼얼하게 하고 귀가 떨어질 듯 매서운 추위지만 느껴지는 청아함은 차가움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거센 바람 소리를 들으며 함께 밤을 지새운 사진기자가 꽁꽁 언 손으로 카메라 셔터를 열심히 누르다 입을 뗐다.
“선배, 제가 생각한 그림이 아니에요.”
해가 너무 멀리 있단다. 작품(?)을 만들고 싶었지만 녹록지 않은 모양이다.
새파란 하늘 아래 구름 위의 땅 안반데기
수확 끝난 고랭지채소밭 사이로 걷는 코스
얼마 전 내린 눈에 하얀 융단 깔린 듯 장관
사계절 내내 절경 자랑 고루포기산~대관령
올림픽 경기장·경포호·동해바다 볼 수 있어
산악구간 탓 겨울 산행 장비 단단히 갖춰야
■하늘과 땅 사이 펼쳐진 '화이트 카펫'
다시 대기4리 마을회관으로 향했다. 언 몸을 녹이고 오전 8시 본격적으로 올림픽 아리바우길 5코스를 걷기 시작했다. 올림픽 아리바우길 5코스는 고랭지채소밭으로 형성된 안반데기 마을길 구간이 5㎞, 백두대간인 고루포기산부터 대관령까지 산악 구간이 6.8㎞, 총 11.8㎞다.
시작점부터 해발 1,100m 고지다. 그야말로 구름 위 땅이다. 코스는 피덕령~멍에전망대~고루포기산~횡계전망대~샘터~능경봉~대관령으로 이어진다. 대기4리 마을회관 앞에 차를 주차해두고 고루포기산 방향으로 난 가파른 길을 올랐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상태로 1㎞, 20분 정도 오르면 길 옆 오른쪽으로 멍에전망대가 나온다.
수많은 돌과 바위로 네모지게 만들어 놓은 이곳 이름'멍에'는 소가 쟁기를 끌 때 목덜미에 얹는 '멍에'에서 따왔다. 소와 한 몸이 돼 험한 밭을 일궜던 화전민들의 애환과 궂은일을 해냈던 소에 대한 고마움을 담은 정겨운 이름이다. 얼마 전 내린 눈으로 멍에전망대 올라가는 돌계단은 이미 반질반질한 빙판이 됐다.
이미 다녀왔지만 한 번 더 어기적어기적 전망대 정상에 오르자 아까와는 다른 느낌이다.
새벽녘 수줍었던 안반데기는 새파란 하늘 아래 부드러운 하얀 융단이 깔린 채로 장엄함을 드러냈다. 수확이 끝난 안반데기는 흰 눈으로 덮여 겨울잠에 든 듯 고요했다.
“여름이 오면 구름도 초록색으로 물들일 만큼 광활한 채소밭이 되겠지….”
'안반데기'는 현재 28가구의 농가가 거주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고랭지채소밭이다. 무려 198만3,471㎡(260만여평)에 달한다. 떡을 칠 때 쓰는 나무판 '안반'을 닮았다고 해서 '안반', 고원의 평평한 땅을 이르는 '더기'의 강릉 사투리인 '데기'가 합해진 순우리말이다.
멍에전망대에서 빠져나와 고루포기산 입구까지는 구름 위를 미끄러지듯이 마을길을 따라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길은 기본적으로 농로이기 때문에 콘크리트로 잘 포장돼 있어 무리 없이 걸을 수 있다.
걷는 도중 '고향의 향기(?)'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거름 더미가 보인다.
덤프트럭이 줄지어 거름을 공터에 실어 나르면, 포클레인은 가축분뇨와 잘 쪼개진 나무 조각들을 섞어 겨우내 발효시킨다고 한다. 화학비료가 아닌 우리 몸에 가장 좋은 자연 그대로의 '천연비료'다.
■장쾌한 백두대간, 그리고 동해 바다
너른 날개처럼 펼쳐진 '안반데기'를 눈에 실컷 담은 후 고루포기산으로 입산하기 전 잠시 눈밭에 앉아 신발끈을 조였다. 안반데기 마을길이 끝나는 해발 1,238m 고루포기산부터 대관령까지의 구간은 전형적인 산악 구간으로 백두대간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않는다.
봄이면 연초록 수목이, 여름이면 푸른 숲길이 펼쳐지고 가을엔 단풍, 겨울엔 설경이 장관을 이루는 4계절이 아름다운 구간으로 소문났다. 고루포기산은 강릉과 평창을 가르는 경계에 있다. 강릉에서는 '골폭산', 평창군에서는 '고루포기산'이라 했다. 각각 마을 이름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이제부터 산악 구간에서는 내리막길이 있어 미끄러질 것을 각오하고 아이젠 등 겨울철 산행 장비를 단단히 갖춰야 한다. 높은 나무가 우거진 고루포기산에 발을 디디자 마을길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겨울 숲길이 반겨준다. 공기 또한 더 상쾌해졌다.
묵묵하게 30분 정도를 걸었을까. 숨이 차올라 한계점이 도달했을 무렵 드디어 데크전망대에 도착했다.
한눈에 2018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리는 횡계마을 일대와 올림픽 경기장이 내려다보인다. 얼마 남지 않은 올림픽이 다시 한번 실감나는 순간이다.
이제 5코스의 절반쯤 왔다. 반만 더 걸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목을 축이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오르내리는 산길 3.8㎞를 더 걷자 행운을 안겨준다는 '행운의 돌탑'이 반겨준다. 힘들어 포기할 때쯤 선물처럼 하나씩 등장하는 명소가 끝까지 걸으라고 등을 떠미는 것 같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돌탑 크기에 한번 놀라고, 이곳을 등산하는 모든 이의 안녕과 행운을 기원하기 위한 탑이라는 친절한 설명을 읽고선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어 능경봉 오름길을 지나며 이 땅의 기둥인 백두대간의 장대함이 온몸에 전율로 퍼졌다.
드디어 능경봉이 쓰인 표지석에 다다르자 강릉 시가지와 경포호, 수평선이 선명한 동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장관이 펼쳐지니 지금까지 걸어온 모든 길을 이곳을 위해 걸어온 것 같아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제부터 대관령휴게소까지는 3㎞ 남짓 편안한 내리막이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마음을 내려놓다간 꽁꽁 언 백두대간에 엉덩방아를 찧는다.
이하늘기자 2sky@kw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