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올림픽 트레킹 로드를 가다]하늘 찌를 듯한 자작나무…곱게 핀 꽃들 길벗이 되어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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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명품하늘숲길 `자작나무코스'

◇위부터 명품하늘숲길 자작나무코스 중간에 핀 산철쭉이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만항재에서 함백역으로 석탄을 운반하던 '운탄고도'에 핀 민들레의 모습.2018평창동계올림픽 유산 창출을 위한 강릉, 평창, 정선 개최지 둘레길 탐사가 시작됐다. 둘레길에는 다양한 우리 꽃들이 피어나 등반객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왼쪽부터 얼레지, 남산제비꽃, 노루귀, 현호색, 홀아비바람꽃, 꿩의바람꽃, 한계령풀. 정선=김남덕기자

시작점인 해발 1,330m 만항재 정상

곁에는 야생화 한가득 꽃잔치 벌어져

석탄 실은 화물차 내달렸을 '운탄고도'

아름다운 걷기 명소로 화려하게 부활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맛 … 자연의 멋

산악자전거 마니아들도 좋아할 코스

일명 '왕따잣나무' 인근은 유명 비박지

하이원CC까지 9㎞ … 지루할 틈 없어

명품하늘숲길의 두 번째 구간은 만항재와 하이원CC로 이어지는 '자작나무코스'다.

저마다 하늘을 찌를 듯 큰 키를 하고는 서로의 어깨를 의지하고 있는 자작나무의 향연이 그야말로 일품인 곳이다. 코스 이름도 그래서 붙인 것 같다. 물론 다양한 수종의 나무와 형형색색의 꽃잔치도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다. '하늘마중코스(본보 지난 16일자 20면 보도)'에 이은 운탄길, 운탄고도(運炭高道)의 나머지 구간으로 거리는 9㎞에 이른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4시간 정도면 코스를 둘러볼 수 있다. 하지만 막상 길 위에 오르면 예사롭지 않은 풍경에 혼이 나가 시나브로 흐른 시간을 원망할지도 모른다.

# 차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 '만항재'=적멸보궁 정암사를 스치고 만항마을을 지나 하늘을 향해 난 길을 타고 오르니 멀리 만항재 정상이 보인다. 이번 트레킹의 시작지점으로 잡은 곳이다. 표지석을 보니 해발고도가 무려 1,330m. 이곳과 줄기가 맞닿은 함백산 높이가 1,573m, 운탄고도를 품에 안은 백운산 정상이 1,426m 정도니 어지간히 높은 고개다. 정선군 고한읍과 태백시 혈동, 영월군 상동읍이 경계를 이루는 지점이기도 한 이곳은 포장된 고개 중에서는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특히 운탄고도로 접어드는 길을 등에 지고 동쪽, 남쪽, 서쪽에 온갖 야생화를 한가득 담아 놓은 하늘숲 정원, 바람길 정원, 산상의 화원을 곁에 두고 있으니 뜻밖의 눈호강은 각오(?)해야 한다. 그래서 매년 여름 이곳에서는 '고한 함백산 야생화축제'가 열린다. 어느새 이곳에 왜 왔는지는 까맣게 잊고 꽃밭 구석구석을 서성인다. 사진부장도 꽃 사이로 난 길에서 서다, 눕다, 쪼그려 앉았다 촬영에 여념이 없다.

여기저기 벌어진 꽃잔치에 정신이 혼미해 질 때 즈음 제법 센 바람 한 줄기가 달려와 휙하고 모자를 날려버린다. 정신이 번쩍 든다. 내빼는 모자를 허겁지겁 잡아채고는 머리 위로 단단히 동여맸다. “이러다 늦겠어~” 서둘러 트레킹길에 올랐다. 바람을 타고 정신없이 일렁이는 꽃들의 환송은 덤이다.

# '운탄고도'의 아이러니=무슨 공사 중인가 보다. 군데군데 길이 파헤쳐져 있고 포클레인 같은 중장비도 보인다. 물이 고여 질척한 바닥을 밟고 한참을 더 걸으니 단단하고 뽀송뽀송한 제대로 된 길이 나온다. 어느새 공사하는 소리도 잦아들었다. 만항재는 운탄고도의 시작 지점이다. 이곳을 출발해 함백역까지 40여㎞에 이르는 구간을 석탄을 가득 실은 수백대의 트럭이 굉음을 내며 내달렸을게다. 1960년대 국토건설단이라는 이름으로 동원된 2,000여명의 사람이 삽과 곡괭이로 만든 길. 우리와 동행한 김남철 강원랜드 산림자문위원이 일러준다.

“장비도 변변치 않은 시절에 그분들이 얼마나 고생을 하면서 이 길을 만들었겠어요.”

운탄고도는 우리나라 산업화의 동맥 역할을 했다. 하지만 석탄의 세기가 저물면서 본래의 역할을 잃은 채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산업화가 남긴 생채기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를 단 채 방치돼 왔다. 말 그대로 잊힌 고도(古道·옛길) 신세가 돼 버린 것.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운탄고도는 강원랜드가 들어서면서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아 화려하게 부활한다. 이제는 아름다운 트레킹 코스 첫손에 꼽힌다. 이런 걸 두고 '아이러니'라고 할까. 모자를 비집고는 땀 한 줄기가 이마를 가른다. 그 시절, 맨손으로 길을 낸 이들이 흘린 눈물 섞인 땀과는 분명 다른 것이다. 석탄가루를 머금고 거뭇해진 길은 땀방울이 번지면서 더욱 선명해진다.

# 좀 더 자연에 가까운 '자작나무코스'=운탄고도를 타고 걷는 '자작나무코스'는 1주일 전 걸었던 '하늘마중코스'와 하나로 이어진 길이기는 하지만 느낌은 많이 다르다. 물론 고산준령에 어깨맞춤을 하고 걸을 수 있다는 특별한 경험은 계속되지만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맛이 있다. 자연에 더 가깝다는 표현이 어울리겠다.

간혹 아찔한 절벽을 옆에 두고 걸을 수도 있으니 산악자전거를 즐기는 이들에게는 스릴 넘치는 코스일 수도 있겠다 싶다.

쉼터가 많았던 이전 코스 같지 않아 불편하다는 산행객도 있지만 오히려 그 편이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표지판 수도 훨씬 적다. 하지만 만항재에서 출발해 길을 따라 혜선사 방향으로 발길을 옮기다 보면 어렵지 않게 코스를 탈 수 있다. 우리도 혜선사 표지판을 따라 길을 걸었다.

토요일, 일요일만 되면 꽤나 많은 사람이 보이는 곳이지만 평일이라 그런지 오고 가는 사람들은 뜸하다. 피톤치드를 풀어놓아 한껏 상쾌해진 공기를 한입 가득 베어 문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들의 향연도 싱그럽다. 말그대로 '유유자적'이다. 혜선사를 300m 남긴 지점에서 갈림길이 보인다. 차량 통행을 막기 위해 설치한 임도 차단기도 바로 옆쪽에 자리 잡고 있다. 여기서 임도 차단기 너머 보이는 오르막길로 그대로 직진해야 한다.

# 왕따잣나무 찍고 하이원CC로=오르막을 오르면서 길 아래를 힐끗 쳐다보니 표지판으로 친절하게 길을 일러준 혜선사가 눈에 들어온다. 나무들의 무리 속에 폭 파묻혀 있는 아담한 사찰의 모습이 꽤나 운치 있어 보인다.

오르막길 끄트머리에 다다르니 평평하고 너른 공터가 나온다. 그런데 그 가운데 나무 한 그루가 덩그러니 서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재밌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나무 별명이 '왕따잣나무'로 붙여졌다고 한다. 그런데 소문 그대로, 너무 그 모습이어서 피식 하고 웃음이 흘러나왔다. 여기가 바로 운탄고도의 유명한 비박지다. 겨울철이면 많은 사람이 이곳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쉬어 간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늘이 하나도 없어 일단 통과.

'자작나무코스'는 걸으면 걸을수록 낯빛을 달리하는 길들이 만화경처럼 펼쳐져 걷는 재미를 더한다. 지루할 틈이 없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나오고 다시 오르막길이 있다 싶으면 땀을 식히고 길 밖의 풍경을 본다. 쪽빛의 하늘과 하얀 구름, 녹음이 우거진 산과 산허리의 흐릿한 경계들이 만들어낸 풍경은 물감을 풀어 놓은 것처럼 그냥 그림이다.

얼마쯤 걸었을까. 내리막길에 또 다른 임도 차단기가 나온다. 여기서 우측으로 가면 하이원CC가 나오고 계속해서 가면 그대로 하늘마중코스를 지나 화절령이다.

자작나무코스는 만항재에서 출발하는 게 수월하다. 해발고도가 높기 때문에 당연히 내리막이 많다. 그래서 겨울철 만항재에서 하이원CC 방향으로 썰매를 타면서 즐기는 트레킹이 유명하다.

오석기기자 sgtoh@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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