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한중관광을 열다]中 농촌의 삶 소박한 붓칠로 그려내는 그곳

길림성 동풍현 민풍민속 `농민화'

◇ 위 부터 조영평 作 '대지에 새 봄이 돌아왔네',요풍림 作 '오리떼와 함께', 장견 作 '방목 후 귀갓길'. 조영평 作 '파종해요'.

1896년 마을 사람들 집 천장에 채색화 그리기 시작 '채붕화'라 불려

1988년 中 문화부 '현대민간회화 화향' 명명 … '동풍농민화' 이름 날려

현재 동풍현 농민화 작가 1만2,000여명 … 특색 있는 신흥산업 부상

중국 길림성 중남부에 위치한 '동풍현'은 '5산1수4분전(五山一水四分田)'의 지형특징을 가지고 있는 반산간구역이다. 이곳은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중국 그 어느 곳보다도 정열이 넘치는 민풍민속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천혜의 조건을 바탕으로 현대민간회화예술이 뿌리를 내렸고 열정적인 농민화작가를 다수 배출했다. 농민화는 형상이 소박하고 색채가 명쾌하며 구도가 새롭고 풍만한 것이 특징이다. 중국 관동지역의 우수한 전통문화 특색과 농후한 북국민속풍정을 그대로 구현한 것도 특징이다. 특히 화법이 호방하고 무게감이 있으며 조화롭다. 농민화는 장기적인 예술적 실천과 탐색을 거쳐 민족전통을 기반으로 하고 자신의 생활을 원천으로 하는 창작의 길을 개척했다.

# 농민화의 태동

1896년,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은 생산생활에 대한 수요와 미적 감각에 대한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민족과 지역특색이 다분한 민간예술작품을 창작했다.

사람들은 가옥을 인테리어하면서 종이를 붙인 천장에 채색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기존 양식이나 참고할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미적 감각과 호감도에 따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이를 '채붕화'라고 불렀다. 현지의 부녀자들은 생활에 재미를 더하기 위해 베개에 수를 놓기도 하고 꽃신에 수를 놓았다. 또 명절이나 결혼식, 장례식 등 활동에 맞춰 종이공예화, 목각, 재두화 등을 창작했다.

이러한 민간예술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특정 지역의 미적 표준과 특징을 형성했다. 대표적으로 동풍현의 남툰기전 홍랑두촌의 이씨가족이 유명하다. 이씨가족 중 이유씨는 어릴 적부터 손재주가 뛰어나 종이공예에 능할 뿐 아니라 모초지에 그림을 잘 그렸다. 그리고 민간가옥의 천장에 각종 산수화를 그리기도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독특한 풍격의 민간채색회화 형식을 형성했다. 1970년대 초 이씨가족의 회화기예는 이홍산의 아들 이준민과 이준걸이 계승하게 됐다. 어려운 가정조건으로 이준민, 이준걸은 선후로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농사를 짓게 되었다. 귀농 후 칠색의 전원과 농촌의 열정적인 생활 정경은 그들의 시야를 넓혀주었는데 이준민, 이준걸의 인솔하에 장옥연, 요풍림, 이승화 등 귀농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아마추어미술팀을 구성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 이때부터 동풍농민화의 새로운 기원이 탄생하게 됐다.

1973년 동풍농민화 작가 수가 27명으로 확대됐고 17폭의 작품을 창작했다. 이준걸이 창작한 '학이'는 길림일보에 발표되기도 했다. 1975년 더욱 많은 농민군중이 예술활동에 참여하게 하기 위해 동풍현 문화주관부문은 수수향에 문화잠을 설립했고 이때부터 농민화 창작활동이 조직적으로 진행됐다. 현 문화관에서 미술전공의 간부를 파견해 지도를 진행하고 성, 시 군중예술관의 전문가들을 요청해 농민화 골간작가를 육성하는 데 견실한 기초를 닦아 놓았다. 이러한 골간작가들은 선후로 전국 각종 유형의 경기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83년 중국 제1회농민서화대전에서 동풍현은 6폭의 작품을 선보였는데 그중 장옥연이 창작한 '행복한 만년'이 1등상을 수상했고 이승화가 창작한 '농망계절', 요풍림이 창작한 '관동연'이 2등상을 수상했다. 동풍농민화사업을 진일보 추진하기 위해 동풍현 문화관은 농민화훈련과 창작활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했다. 1986년 나단백진, 영합향, 소사평진, 수수향의 농민화 훈련반이 문을 열었다. 지도선생님이 팀을 나눠 책임지고 학원들 사이에서 서로 돕고 서로 학습하며 전문가가 교수하는 방식을 취했는데 대량의 작가를 배출됐고 농민화 300여폭을 창작했다. 이로부터 농민화사업이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1988년 동풍현은 섬서 호현, 상해 금산현과 나란히 중국문화부로터 '중국현대민간회화 화향'으로 명명됐다. 이때부터 동풍농민화는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고 중국농민화 영역에서 앞자리를 서게 되였다. 2008년 동풍농민화는 길림성 '성급비물질문화유산' 명록에 수록됐고 2010년 중국미술협회로부터 '중국10대농민 화향'의 하나로 선정됐다.

# 부흥기 맞이한 동풍농민화

동풍농민화는 한동안 맹아시기를 거쳐 점차 부흥하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단순예술창작으로부터 시장산업화 발전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농민군중들은 문화생활에 대한 추구가 날로 높아지고 농민화를 창작하는 사람들도 점점 증가세를 보였다. 오늘까지 270여폭의 동풍농민화가 국가급상을 수상했고 152폭의 작품이 중국미술관에 소장됐으며 400여폭의 작품을 유엔과 세계 각국 예술관이 소장 중이며 6,000여폭의 작품을 국내외 전문가, 학자 등이 소장하고 있다. 현재 동풍현 농민화 작가는 1만2,000여명에 달하는데 그들은 수중의 화필로 즐거운 생활과 아름다운 대자연을 칠색화폭으로 그려내고 있다.

# 농민화의 발전 진로

최근 동풍현은 농민화 발전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통해 동풍농민화를 길림성의 문화브랜드로 발전시켜 전 세계로 홍보하고 있다. 2011년 총면적이 1만㎡에 달하는 중국동풍농민화관이 건설됐다. 현재 20세기 1950년대 이래 창작된 수많은 우수 농민화작품이 화관에 수록됐다. 화관이 설립된 후 각 농촌에 농민화창작실을 보급했고 농민화 창의 산업의 집성발전과 규모효과를 제고했다. 그리고 동풍농민화의 구역우세와 자원우세를 충분히 발휘해 비교적 완벽한 문화창의 산업사슬을 구축, 문화창의산업 집성발전과 산업규모효과를 충분히 발휘하도록 했다. 특히 길림성 장춘시 미디어산업과 애니메이션산업의 윈윈을 실현하는 등 농민화산업과 기타 문화산업의 합작과 교류를 강화시켰다. 오늘날 농민화는 이미 동풍현 특색을 갖춘 새로운 신흥산업으로 부상했다.

수얼룽 조배배 취재/장춘영 편역

※이 기사는 강원일보와 기사 제휴를 한 중국 지린성 최대 언론인 길림일보의 기사 원문을 번역한 것으로 대부분의 중국식 표현을 그대로 표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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