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반

<脫강원인 入강원인> “마을 비우라는데 갈 곳 없어 막막”

■주문진 피란민촌 사람들

◇한국전쟁으로 주문진으로 내려와 살게된 실향민들이 과거를 회상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주문진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피란민촌은 시간의 변화 속에 정지된 것처럼 반세기 동안 한결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다.

1년 후면 사라지게 될 주문진읍 피란민촌은 머리에 닿을 듯 낮은 슬레이트 지붕아래 벽돌 블록으로 겨우 틀을 잡고 있는 벽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성인 키보다 낮아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드나들기 힘든 출입문을 지나면 길보다 낮아 바닥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방이 창문도 없어 햇빛이 들지 않아 깜깜하다.

빗물이 집 안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기 위해 천막으로 가리고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타이어를 올려놓은 집들에선 연탄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다.

집들은 대부분 23.14∼26.45㎡로 간혹 39.67㎡, 49.59㎡ 정도의 집도 있으며 또 어떤 집은 개조를 해 더 넓게도 사용한다.

병으로 보조금을 받아 외롭게 혼자 생활하는 유영만(57)씨는 “불쌍하게 혼자 사는 이곳 주민들에게는 마지막 안식처 같은 곳이다”라고 말하며 어두컴컴한 방 앞에서 담배를 피우며 앉아있다.

요즘 철거 소식에 대부분 한 가구에 한 명씩 살고 있는 독거촌인 이곳 주민들의 모든 관심은 이주비용 문제에 쏠려 있다.

거주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받고 있어 철거가 논의됐지만 경제적인 능력 때문에 주민들은 쉽게 철거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은 물론 가진 것도 없는 70∼80세의 고령자들이 대부분인 주민들이 보금자리를 내주고 다른 곳을 스스로의 힘으로 찾기에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조그만 1칸짜리 방에 홀로 살고 있는 이용비(79)할머니는 “피란민촌까지 흘러와 보기엔 이래도 내 집에서 살고 있는데”라며 “보상이 된다고 하지만 철거한다고 나가라고 하면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라며 근심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마을사람들은 힘겹게 생활했지만 6·25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내려와 살던 그때를 기억해 여전히 이곳을 ‘피란민 수용소’라고 부르며 마지막 겨울을 보내고 있다.

권태명·허우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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