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년간 멈춰선 녹슨 열차 '悲무장'
-철책선 자유롭게 넘는 새 '飛무장'
냉전시대가 종식됐음에도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이데올로기의 유물로 남아있는 곳 DMZ. DMZ는 겨울비를 흩날리며 40여명의 'DMZ 투어 및 체험 행사' 참가자들을 맞았다. 제2회 DMZ평화상 시상식의 일환으로 마련한 이날 체험행사에는 진장철강원도립대학장 김재한한림대교수 고춘복정토회사무총장 등 평화와 DMZ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했다.
▲비(非)무장지대=DMZ
비무장지대 즉 DMZ의 사전적 의미는 '국제법상으로 국가가 병력의 주둔과 군사시설의 유지를 하지 아니할 의무를 지는 특정지역이나 구역'을 말한다. DMZ 투어 참가자들은 경계 초병들의 계속되는 확인 절차를 거쳐야 했다. 민통선으로 들어가자 도로 주변으로 꼽혀있는 지뢰 표지판들이 눈에 띄었다.
그 중에서도 철원군 양지리로 들어가는 검문소 표지에 적힌 글과 사람들의 모습은 생소함 그 자체였다. '출근시간 06시 40분부터, 퇴근시간은 18시까지' 라는 표지판. 그리고 빨간 모자와 표찰을 달고 지나는 사람들. 이들은 민통선내 군인이 아니라 농사를 위해 출입하는 영농인들이다. 내 땅의 농사를 위해 출·퇴근하는 농민들, 내 논을 살펴보기 위해 빨간색 모자와 표찰을 해야하는 농민들, 그들이 비무장지대의 농민들이였다.
▲비(悲)무장지대=DMZ
“노동당사 앞에서 고향 통천군에 다녀오시겠다는 어머니와 이별한 게 18살 때인데 여기에 온 나는 그 때의 어머님보다 34살이 많은 77살입니다” 열린음악회 무대로, 또 '서태지와 아이들'의 뮤직비디오 장소로 잘 알려진 북한 노동당사. 폐허가 돼버린 노동당사 앞에서 만난 김귀환(서울 성북구·77)옹의 눈에는 그리움과 회환이 가득했다.
월정리역의 포탄과 총탄의 흔적, 그리고 달리지 못한 지난 53년의 세월을 대변하는양 잔뜩 녹이 슨 열차는 원산을 향해 달리고 싶은 철마의 간절함을 표현하고 있다. 열흘동안 24번이나 주인이 바뀌었던 백마고지. 맞은편 중턱에 자리한 위령탑에는 808명의 아군 사망자의 이름과 실종 부상자의 수를 뜻하는 3,423개의 크고 작은 돌들만이 희생자들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비(飛)무장지대=DMZ
세계 두루미의 4분의 1, 재두루미의 절반이 찾는 순례지, 철원 DMZ. 전쟁 중단을 위해 인간이 그어 놓은 한시적 존재인 동시에 그 덕분에 반세기동안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DMZ는 철새들의 천국이다.
야생동물 보호센터에서는 중금속 중독 또는 전기줄에 걸려 날개가 부러지거나 탈진한 두루미나 독수리 등이 보호협회 회원들의 보살핌으로 다시 창공을 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인간이 만든 문명의 위협에 목숨을 잃을 뻔 했던 철새들이 다시 삶의 희망을 찾는 이곳. 바로 과거와 현재를 껴안는 DMZ의 미래, 즉 반성과 화해를 통한 희망과 평화의 모습이었다.
늦은 밤 숙소인 철원생태학교 공터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은 참가자들은 하룻동안 느낀 DMZ, 그리고 평화, 생태에 대한 이야기로 자리를 떠날 줄을 몰랐다. 류병수기자 dasan@kw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