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하늘은 조용하지만, 사람 사는 집은 시끄럽다. 위층의 발자국, 아래층의 원망이 얽히고설켜 고요한 밤을 깨운다. 소리 없는 전쟁이 아니다. 층간소음은 이제 살인과 폭행, 자해와 우울로 이어지는 ‘소리 있는 참극’이다. 오죽하면 법이 나섰겠는가. 경실련이 최근 국회에 제출한 ‘공동주거시설 층간소음관리법’ 제정 청원은 평화로운 일상을 바라는 절규이자, 무대응으로 일관해 온 시공사와 제도를 향한 성난 표현이다. 시공사가 책임지고 바닥충격음을 측정하고, 측정 협조를 거부한 세대에는 과태료를 부과하자는 이 법안은 감정이 아닌 구조를 겨눈다. ▼지난 21일 서울 관악구 아파트 방화도 이웃 간 층간소음이 발단이 됐다. 자신은 숨졌고 입주민 13명은 부상을 당했다. 층간소음 관련 강력범죄는 2016년 11건에서 2021년 110건으로 10배 증가했다. 올 3월에도 층간소음 문제로 갈등을 빚던 이웃 주민을 살해한 40대 남성이 항소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받았다. 강력범죄가 된 층간소음. 이는 단순한 생활 불편이 아니라 사적 복수가 공적 판단을 대신하는 위험한 징후다. 법도 이웃도 무력할 때 사람은 칼을 든다. ▼‘탐관오리보다 못한 집장사’라는 말이 있다. 품질이 아니라 브랜드를 팔고, 책임은 입주민에게 돌리는 시공사들의 관행은 집이 아니라 분노를 짓는다. 아랫집의 잠을 빼앗고, 윗집의 아이에게 ‘뛰지 말라’는 경고를 남긴 채 그들은 빠져나간다. 법이 시행되면 무책임한 시공사는 민낯을 드러낼 것이고, 협조하지 않는 세대도 공동체의 이름으로 제재를 받게 될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조용한 곳일수록 마음의 소리가 더 크다”고 했다. 공동주거시설은 물리적 공간의 공유를 넘어 정서와 인내, 침묵까지 공유해야 한다. 이번 청원이 단순히 벌금을 부과하는 차원이 아닌 건설사와 거주민 모두에게 구조적 책임을 묻는 시금석이 됐으면 좋겠다. 공동주택이 소리 없는 감옥이 돼선 곤란하다. 법이 먼저 문을 열어야 한다. 그 문틈으로 상식이, 배려가, 평화가 들어설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