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식이형, 잘가요.”
지난 22일, 춘천의 한 장례식장. 검은 옷으로 가득한 영결식장 안은 슬픔과 웃음, 시와 음악이 어우러졌다. 하루 전, 향년 70세로 별세한 김현식 전 대일광업 대표를 기리는 ‘기억식’이 열린 것이다. 그 자리에는 허영 국회의원과 육동한 춘천시장도 있었지만, 공간을 가득 메운 이들은 단연 김 전 대표와 오랜 인연을 맺어온 예술가들이었다. 포크가수 녹우 김성우씨가 고인의 애창곡 ‘꿈이어도 사랑할래’를 부르자, 잔잔하던 공간은 눈물로 흔들렸다. 그러면서도 누군가는 미소 지었고,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 불렀다. 분명 추모의 자리였지만, 동시에 김현식이라는 사람을 기억하는 이들이 손수 준비한, 그들만의 예술제였다. 사업가의 외피를 지녔던 김 전 대표는 그 이면에 누구보다 치열한 문인이고, 섬세한 수집가이자 독립 출판인이었다.
‘데미안 책방’, ‘달아실 장난감 박물관’, ‘권진규 미술관’ 에 대한 기억들은 문화로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그의 치열했던 흔적이다. 소설을 쓰고, 고서를 모으고, 문화 분야 후원을 아끼지 않던 사람. 지역의 문화지형은 그로 인해 조용히 그리고 깊이 있게 바뀌었다. 추모사에 나선 육동한 시장은 “(김 전 대표는)자신의 것들을 잘 보관하고 공유하는 거룩한 성자였다”며 “그에 대한 사랑, 안타까움과 기억의 모든 장면들은 우리 모두의 기억에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인 윤미소 달아실 출판사 대표는 “평소 고인은 농담처럼 살아 있을 때 좋아하는 사람들, 보고 싶은 사람들 한자리에 모아 놓고 잔치처럼 웃으면서 즐겁고 신나게 이별하자고 했었다”며 “이 약속이 지켜지지 못했지만 저희를 사랑해 주시고 마음껏 베풀어 주신 김현식 선생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날의 기억식은 한 도시의 감수성을 문화로 키우려고 한, 한 사람에게 전하는 작별 인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