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쌀은 한민족의 주식이다. 밥을 먹어야 힘이 난다는 밥심의 의미만 살펴봐도 우리 민족이 얼마나 쌀과 친숙한지 알 수 있다. 영양학적으로도 탄수화물, 단백질, 식유섬유는 물론 필수아미노산과 미네랄 성분이 풍부해 성장발육을 촉진하고 빈혈, 골다공증 예방에 효과있다고 한다.
한반도에서의 벼농사 기원은 충북 청주 소로리에서 발견된 볍씨를 근거로 구석기시대인 약 1만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D 330년 논벼 재배를 위한 용수 확보를 위해 축조돼 현재 전북 김제시 부량면에 소재한 벽골제(碧骨堤)는 삼국시대들어 벼 재배가 본격화되었음을 알 수 있는 우리나라 최대 고대 저수지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서도 1429년(세종 11)에 편찬된 『농사직설(農事直說)』 등에서 벼농사법이 소개된 것을 보면 당시 농경사회에서의 벼재배는 매우 활발했음을 엿볼 수 있다.
이후 일제식민치하에서 쌀은 수탈의 대명사로 자리잡으며 우리 민족의 애환을 떠올릴때 자주 인용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60~70년대 산업화시기, 쌀은 풍요의 상징으로 불렸다. 부족했던 쌀을 대신해 밀가루 사용 장려 운동이 일어났을 정도로 초근목피(草根木皮) 시절 쌀은 아주 귀중한 식재료 중 하나였다. 밥 한톨 남길 때면 어머니로부터 꾸지람 듣기가 일쑤였다.
그런데, 최근들어 보편화되고 있는 식문화의 서구화와 함께 쌀소비 부진 여파로 재고 쌀이 넘쳐나는 시대가 된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지난 2024년 5월 기준으로 전국 3,400개 이상의 정부 양곡창고의 쌀 재고물량은 무려 168만톤에 달했으며, 이에 따른 연간 보관비만 4,061억원에 이르렀다.
반면 우리나라 1인당 쌀 연간 소비량은 2011년 71.2kg에서 지난 2023년에는 56.4kg까지 줄었고 쌀 생산량은 2022년보다 1.6% 감소한 370만2천톤으로, 생산량은 감소하고 있는데 반해 쌀 재고 물량은 갈수록 쌓여만 가는 구조다. 어떻게든, 예전처럼 쌀을 귀중한 식재료로 인식하고 소비 확산으로 반전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현 정부는 재고 쌀 문제 해결을 위해 벼 재배면적 감축 정책을 통해 벼생산량을 원천적으로 줄여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안정적인 벼 생산량 확보는 국가 존립을 위한 식량 주권적 차원에서 접근해야지 인위적인 재배면적 감축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본다. 이웃나라 일본의 선례를 참조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다. 최근 일본은 쌀값 급등 등 쌀 부족에 따른 사회 문제는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농사가 시작되기 전, 대형 외식업체에서 현지를 방문해 농가와 계약재배 형태로 생산되는 쌀 전량을 구입하겠다는 의향을 밝히는가 하면 쌀가게에서 소비자에게 판매량을 제한하는 기현상을 빚은 바 있다. 지난 2월 기준으로 일본 총무성이 발표한 도쿄도 23개구 소비자물가 통계에 의하면 5㎏ 짜리 ‘고시히카리’ 쌀 소매가는 4,363엔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후 일본 정부에서 비축 정부미 긴급 방출 발표에도 불구하고 좀체 진정되지 않고 있다.
재고 쌀이 넘쳐난다고 인위적인 벼재배 면적의 축소 지향적 대책만 내세울 게 아니라 소비 확산 정책이 동반되는 대안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여겨진다. 쌀 소비 확산을 위해 두 가지 제언한다. 첫째 K-푸드 세계화에 맞춰 쌀로 만든 가공식품 개발과 수출 확산을 위한 정책 발굴 및 예산 투입을 확대해야 한다. 둘째, 아침밥 먹기 등 근원적인 쌀 소비 확산을 위한 장려 운동과 식문화 확산을 위해 범국민적 참여가 확대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1997년 발발한 외환위기 당시 금모으기 운동에 버금가는 쌀 소비 확산을 위한 범국민 운동이 밀물처럼 일어나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