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The 초점]피로 쓰여 지는 안전수칙

권혁범 춘천소방서장

지난달 25일 오전 9시49분께 서울세종고속도로 세종~안성 구간 천용천교 공사현장에서 교각 상판 210m 구간이 붕괴되어 작업 중이던 노동자 10명이 50여m 아래로 추락해 4명이 숨지고 6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독일의 사회학자 율리히 백(Ulrich Beck)은 “현대사회는 위험사회(Risk Society)로 위험은 단순한 재앙이 아닌 예견된 잠재적 위험으로 급속한 과학기술 발전, 산업화 등에 주로 기인한다”고 경고했다. 오늘날 발생하는 각종 사건·사고의 대부분이 이 말을 증명하고 있다.

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는 “우리가 어느 날 마주친 재난은 우리가 소홀히 보낸 지난 시간의 보복이다”라고 말했다.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안전불감증이 대두되고 대책이 마련되고 있지만 안전불감은 여전히 우리 사회 속에서 현재진행형이다.

과거 국내 건축법은 원래는 허용응력 설계법으로 건물을 짓는 것을 허가했으나 삼풍백화점 참사가 벌어진 이후, 건물이 최대한 버틸 수 있는 정도를 확인하고 설계하는 극한강도 설계법, 한계상태 설계법으로 개정되었다.

독일에서는 고속철도 탈선 사고 후 101명이 사망하였는데 열차가 너무 튼튼해서 구겨진 차체 내의 사람들을 구조하기 힘들었다는 비판이 나왔고 열차 내에 안전망치와 쉽게 깨지는 유리를 설치하여 비상시 깨고 탈출할 수 있도록 개선되었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을 겪은 이후 출입문 비상개폐장치를 비롯해 지하철 위기 상황 시 탈출법을 지하철 곳곳에 적어둬서 시민들이 기억하게 하였고, 화재 원인으로 꼽힌 종합사령실 대응, 지하철 내부의 가연재질은 참사 이후 대응책이 마련됐다. 모든 지하철이 불연재, 극난연재로 교체됐다. 화재 대비 매뉴얼도 마련됐고 비상정지를 시킬 수 있는 버튼도 구비됐다.

이처럼 각종 대형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대책과 안전수칙 및 관련 법령이 정비된다. “모든 안전수칙은 피로 쓰인다.”는 말이 있다.

이처럼 뼈아픈 경험에서도 배우고 개선됨이 없다면, 우리 사회는 앞으로도 헤아릴 수 없는 사회적·경제적 손실을 비용으로 계속 지불할 수밖에 없다. 덧없이 소모되는 비용을 개선의 여지 없이 앞으로 계속 지불할 것이냐의 문제는 우리 사회가 선택해야 할 문제다.

광주 화정 신축아파트 붕괴사고,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사고가 일어난지 2~3년 만에 또다시 고속도로 건설현장에서 노동자 4명이 사망하고, 6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당일 소방청에서는 사상자 구조를 위해 사고 즉시 긴급구조통제단을 가동하고 인근 시·도 119특수대응단 동원령을 발령했다. 국토교통부는 장관을 본부장으로 사고대책본부를 구성하고 조사에 착수했고, 경찰에서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관계자를 입건하여 현재 수사 중에 있지만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사고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망양보뢰(亡羊補牢)’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우리 속담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와 같은 의미로 “양을 잃고 우리를 고친다”는 뜻이다. 이미 어떤 일에 실패한 뒤에 뉘우쳐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각종 안전제도와 지침 등은 일회성으로 끝나서는 결코 안 되는 문제라 할 수 있다. 그것들은 하루아침에 얻어진 산물이 아니며, 수많은 사건과 사고를 뼈아프게 경험하고 나서야 마련된 안전한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 중에 기본이다.

면밀한 조사를 바탕으로 관련 규정, 안전관리 시스템, 감시 장치 등이 새롭게 검토되고, 향후 이러한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2중 3중의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그래야 우리 사회가 안전한 사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고는 사회의 발전과 국민 행복은 사상누각(沙上樓閣)에 불과한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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