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이 개혁신당 허은아 전 대표의 퇴진을 결정한 당원소환 투표가 유효하다는 판단을 내놓자 같은 당 이준석 의원이 9일 "조고각하(照顧脚下·자기 발밑을 잘 보라는 뜻)의 자세로 내가 있는 자리를 돌아보고 비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더욱 정진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창당하던 날의 초심으로 돌아가 모두 함께 앞으로 전진하자"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 의원은 "선출된 지도부가 임기를 마치지 못한 사태는 어느 정당에서든 안타까운 일"이라면서 로마 시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승자가 됐을 때 자신을 적대했던 이들에게도 관용을 베풀었다는 이야기를 거론했다.
그는 "그가 복수를 수단으로 삼았다면 이후 로마의 영광도 없었을 것"이라며 "당원과 지지자 여러분도 이번 일을 반성하며 당을 위해 다시 노력하겠다는 모든 인사들에게 인내와 포용의 마음을 베풀어달라"고 당부했다.
이 대표의 이러한 메시지에 허 전 대표도 반응을 내놨다.
허 전 대표는 "앞으로 전진하려면 뒤에 남겨둔 것에 대한 겸허한 반성이 필요하다"며 "이 의원에게 필요한 것은 조고각하가 아니라 개과천선(改過遷善)"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정치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하는 것"이라며 "이 의원은 사람을 이용하고, 필요 없으면 버리는 정치를 해왔다. 갈라치기 정치로 적을 만든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앞서 법원은 지난 7일 허 전 대표의 퇴진을 결정한 당원소환 투표가 유효하다는 판단을 내놓았다.
서울남부지법은 허 전 대표가 자신과 조대원 최고위원의 퇴진을 결정한 당원소환 투표 효력을 정지해달라며 낸 가처분을 이날 기각했다.
법원은 허 대표가 이주영 정책위의장을 면직하는 과정 없이 최고위 의결을 거치지 않고 새로운 정책위의장을 임명한 행위를 무효라고 봤다.
또 천하람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한 지도부가 긴급 최고위를 열어 당원소환투표 실시, 허 대표와 조 최고위원의 직무 정지를 의결한 것이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허 전 대표와 조 최고위원의 퇴진이 결정된 당원소환투표도 투표를 무효로 판단할 만한 구체적인 소명 자료가 없다며 두 사람이 당 대표와 최고위원직을 상실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법원의 이날 판단으로 지난해 12월 16일 김철근 사무총장 경질에서 시작된 당 내홍은 일단 매듭지어지는 모습이다.
천 원내대표는 입장문을 내 "그간 벌어진 갈등으로 인해 당내 다수 구성원이 매우 큰 상처를 입었다"며 "법원의 결정은 단순한 승패가 아니라 개혁신당 치유와 통합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천 원내대표는 "법원 결정이 나왔기 때문에 허 전 대표의 대표직 상실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당내에서 허 전 대표가 조기 대선 국면에서든 재보궐 선거에서든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참여를 부탁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허 전 대표는 즉각 반발했다.
허 전 대표는 "법원의 판단은 존중하나, 본안 소송을 통해 잠시 가리워진 진실과 정의를 끝까지 추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번 일을 통해 그 실체를 알게 된, 젊은 나이에 가려 있던 구태정치의 표본 이준석과 천하람, 이기인 등에 대한 민형사상 조치는 끝까지 이뤄진다"며 "국민 여러분 앞에 제가 직접 나와 소상히 하나하나 알려나가겠다"고 말했다.
허 전 대표 측 변호인은 "고등법원에 즉시 항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개혁신당은 당분간 현재처럼 천 원내대표가 당 대표 권한을 대행하는 체제로 운영될 전망이다.
그간 개혁신당은 허 전 대표가 당원소환투표 결과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주요 당직자가 2명씩인 기형적 형태로 유지돼왔다.
개혁신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 선고 결과와 시점에 따라 조기 대선 일정이 유동적인 만큼, 향후 정치적인 스케줄을 고려해 선거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거나 새로운 지도부를 뽑을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