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의 고혼과 충신들의 넋을 기리는 제의적 행사들을 모아 축제로 승화시킨 ‘단종문화제’. 1967년 ‘단종제’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 축제는 역사적 의미와 함께 지역 공동체의 정서를 함께 아우르며 강원특별자치도를 대표하는 전통 문화축제로, 영월을 상징하는 향토문화제로 자리매하고 있다. 지금은 영월문화관광재단이 행사를 운영하면서 군민과 관광객이 즐기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현대적인 콘텐츠를 짜임새있게 선보이고 있지만, 그 시절 단종제는 그야말로 영월군 그리고 군민 전체가 하나 되어 준비하고 참여하는 축제였다. 특히 1960~70년대 전국에서 열린 50여개의 지방 문화행사가 가운데 강릉 율곡제와 함께 늘 10~30만원의 정부 지원금을 받는 우수 행사였다. 변변한 볼거리 하나 찾기 힘들 던 그 때, 단종제가 열리는 4월의 영월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인파로 늘 북적거렸다.
단종제는 매 해 전국에서 개최되는 지역문화제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인데다 선거 일정과도 겹치면서 거물급 정치인을 발길을 영월로 향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1968년 참석한 김종필 공화당의장을 비롯해 정일권 국무총리(1970), 백두진 국무총리, 이효상 국회의장(1971)의 방문이 그 것.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량감있는 메시지도 이어졌다. 당시 김종필 의장은 한미정상회담을 위한 박정희 대통령의 방미 일정에 대해 설명했고, 정일권 국무총리는 헬리콥터를 타고 단종제에 참석했다가 돌아가는 길에 벌거숭이 산을 보고 ‘365일식목일론’을 주창했다. 백두진 국무총리는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찬양하고, 영월·정선군을 지역구로 했던 공화당 장승태 의원의 활동을 소개하는 등 문화 보다는 정치적, 정책적 발언이 많이 나와 언론사 정치부 기자들의 발걸음도 잦았다.
지금으로 부터 50년 전인 1975년 4월. 제9회 단종제가 열린 장릉(荘陵)의 사진 속 풍경을 보면 당시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현대의 축제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운영되는 것이 기본이지만, 그때는 몸을 피곤하게 하는, 몸으로 때우는(?) 것이 주된 요소였다. 발디딜 틈 없이 빼곡하게 산비탈을 가득 메운 인파들의 모습이 이채롭게 다가온다. 자세히 보면 나무 위에 자리잡은 사람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나마 나무가 있는 곳은 그늘이라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햇빛을 피할 수 없어 일그러진 표정으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그래도 입은 웃고 있다. 그래서 분위기 만큼은 정겹다. 새벽부터 먼 길을 걸어 축제에 참여하는 것도 당시로서는 흔한 광경이었다.
단종국장을 재현하거나 퍼레이드를 펼치는 모습도 지금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규모는 현재의 모습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아졌지만 당시에는 이를 대하는 사람들 속에서는 단종의 죽음을 함께 아파하고 위로하는 공감의 모습들을 꽤나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단종 역할을 맡은 사람이 지나치면 사람들이 저마다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숙이며 경건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광경들도 조우 할 수 있었다. “왕이다”라고 손을 흔드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많은 어른들은 숙연한 마음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며 단종의 비극을 되새겼다. 요즘은 깔끔하게 정돈된 퍼레이드 형태지만, 당시에는 보다 생동감 있는 재현이 많았다. 사진 속 사육신 행렬을 보면, 목에 나무 칼을 쓴 사람들이 보인다. 이들은 단순한 연기자가 아니라, 단종의 시대를 기억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행진하는 참여자들이었다. 지금 보면 다소 거칠어 보일 수 있지만, 그만큼 진정성이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
단종제는 단종을 기리는 순수한 마음이 그 중심에 있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먼 길을 걸어 단종제 자리를 지킨 이들도 있었고, 전통을 잇기 위한 지역사회의 노력도 쉼없이 이어졌다. 시대가 변하면서 축제의 형태는 달라졌지만, 단종 국장 재현 행사나 단종제향 등 전통행사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지역 주민들의 참여도 높아, 단순한 관광 행사가 아닌 지역의 정체성을 지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강원도의 대표적인 문화축제로 자리 잡은 단종문화제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변화하고 있지만, 그 본질적인 의미를 되새기는 것도 중요하다. 화려한 행사와 다채로운 볼거리가 많아진 요즘, 단종제는 단순한 관광 행사가 아니라,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는 소중한 축제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 지역 주민들과 방문객들이 함께 어우러져 전통을 기억하고, 이를 계승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단종제가 가진 가장 큰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올해 단종문화제는 올 4월25일부터 27일까지 사흘간 장릉과 청령포, 동강둔치 등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