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신년특집]<동화>신춘문예 당선작 '왕버드나무의 소원'

문지원 (광주광역시 동구 산수동)

저수지가 얼어붙자 섬까지 가는 얼음길이 생겼다.아이들이 연을 하나씩 들고 저수지 가운데로 몰려온다.가오리연, 방패연, 문어연……하늘에 띄운 연들이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들 같다.앞서거니 뒤서거니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떼 같다.“아무래도 올 겨울나기는 틀린 것 같은데.” 하늘에 띄워진 연을 올려다보던 왕버드나무가 끙, 소리를 냈다.

왕버드나무는 이 동네에서 나이가 가장 많다.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마을 사람들은 왕버드나무 허리에 색색들이 천을 꼬아 둘러놓고 제사를 지내곤 했다.또 무릎을 꿇고 손바닥을 비비며 기도도 했다.왕버드나무는 사람들의 기도를 받아먹고 아름드리 넓은 그늘을 만들기도 했다.하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런 걸 믿는 사람이 어디 흔한가.더군다나 이젠 너무 늙어서 속은 다 썩고 새잎도 제대로 틔우지 못하는 고목이라면.

날이 저물고 있다.바람이 더 세어진다.아이들은 연줄을 길게 풀어 날린다.오늘이 다 가기 전에 하늘 끝까지 닿고야 말겠다는 듯 연들은 가슴을 잔뜩 부풀리며 날아오른다.“나도 저렇게 날아봤으면 좋겠구먼.” 처음 세상에 눈을 떴을 때부터 왕버드나무는 이 섬에 있었다.한 발자국도 섬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다.새들을 붙들고 이야기를 듣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아저씨는 임금님이 누군지도 몰라요? 아, 글쎄 머리에 금으로 만든 왕관을 썼다니까요.”

“아니요, 전쟁이 났어요! 할아버지, 탱크를 끌고 오는 사람들 머리가 노랬다니까요.” 새들은 열심히 이야기해 주었지만 그럴 때마다 성질 급한 왕버드나무는 짜증이 났다.

“차라리 내가 이 저수지를 걸어 나가는 게 낫지!”

하지만 이젠 늙어버린 왕버드나무는 세상에 대한 궁금증마저 시들해졌다.

연 하나가 왕버드나무 쪽으로 날아온다.힘없이 날아 내리더니 왕버드나무 꼭대기 가지 끝에 걸린다.아이들은 연을 따라 우르르 왕버드나무 곁으로 몰려왔다.

“너무 높아.올라갔다간 나뭇가지가 부러져서 다칠 거야.”

나무 타기를 포기한 형이 연을 잃어버린 꼬마에게 말했다.

“하지만 형이랑 내가 열심히 만든 거잖아.”

꼬마는 울상이 되어 발을 동동 구른다.구경하던 다른 아이가 돌멩이를 집어 던져본다.돌멩이는 연에 가 닿지도 못하고 나무 뒤편으로 떨어졌다.구경하던 다른 아이들도 돌멩이를 던진다.하지만 돌멩이들은 왕버드나무 썩은 가지만 맞추고 떨어진다.바람이 더 거세지자 연이 심하게 몸부림친다.

“저런 연은 쓸모가 없어.다시 찾는다고 해도 구겨져서 날아오르지 못할 거야.” 형이 제 방패연을 꼬마에게 쥐어준다.아이들이 꼬마를 다독인다.겨우 기분이 풀린 꼬마와 아이들은 와, 하고 마을로 달려갔다.덩달아 따라가지 못하는 연은 하염없이 파닥거리고만 있다.

“버르장머리 없는 애들이군.돌멩이를 던지다니.그러지 않아도 아픈 팔이 더 저리고 쑤시잖아.” 왕버드나무가 투덜댄다.왕버드나무 가지 위로 뭉글뭉글 검은 구름들이 몰려들고 있다.

바람이 또 거세진다.왕버드나무 가지에 색실 하나가 걸렸다 날아간다.다 찢어진 검은 비닐봉지도 하나 날아와 걸린다.오늘밤엔 아무래도 눈보라가 거셀 것 같다.어두워진 마을에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눈이 더 굵어지더니 바람까지 거세지고 눈보라가 된다.나이테 안까지 파고드는 추위 때문에 왕버드나무는 자꾸 온몸을 떤다.낮에 아이들이 던진 돌멩이에 맞아 생채기가 난 가지에 쌓인 눈이 쓰라리기만 하다.왕버드나무는 그럴수록 눈을 꼭 감고 잠을 청해본다.올해 겨울을 잘 나야 내년 봄에 잎을 틔우고 새도 불러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꼭 감은 두 눈 가득 햇살 한창인 어느 봄날을 떠올려본다.그렇게 귀찮던 새들의 재잘거림.새잎만 틔울 수 있다면 외롭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조금 전부터 자꾸 꿈을 방해하는 소리가 들린다.뽀시락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푸드덕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도대체 누구야?”

왕버드나무가 소리를 꽥 지른다.가지 끝에 매달려 있던 검은 비닐봉지가 슬그머니 대답한다.

“죄송해요.잠을 깨울 생각은 없었어요.”

“잠 다 깨워놓고 깨울 생각이 없었다고?”

“저도 이러고 있는 게 슬퍼요.이젠 이렇게 다 찢겨서 나뭇가지에 묶여 있으니……”

“그런 건 관심 없어.어서 비키기나 해.네가 앉은 자리는 내년에 새 눈이 돋을 자리라구.”

왕버드나무는 몇 해 전부터 새순이 돋지 않았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그리곤 불평을 잔뜩 늘어놓는다.“오늘은 정말 재수가 없어.가오리연 녀석이 귀찮게 걸리지를 않나.아이들이 돌멩이를 던지지를 않나.밤새 시끄러워 잠을 잘 수가 있나.” 조용하다 싶었던 가오리연도 입을 연다.

“몸이 다 망가졌나 봐요.움직일 수가 없어요.” 가오리연은 울먹이는 것 같다.위에 얹어진 눈더미가 무거운지 대나무살이 잔뜩 휘었다.

“가오리연 씨, 혹시 여기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요?”

검은 새의 날개처럼 펄럭이는 비닐봉지가 조그맣게 속삭인다.

“포기해.발버둥친다고 될 일이 아니야.그냥 겨울이 갈 때까지 기다려.” 왕버드나무의 목소리는 겨울바람처럼 차갑다.

“겨울이 다 가면 저는 아마 다 찢어져서 날지 못할 걸요.연이 하늘을 날아야 연이지.”

“허허, 누가 붙잡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는구나.나도 너 같은 연은 필요가 없다.걸리적거리기나 하지.”

가오리연이 먼저 훌쩍인다.검은 비닐봉지도 따라 훌쩍인다.왕버드나무는 다시 눈을 감고 잠이 오기를 기다린다.하지만 가오리연과 검은 비닐봉지의 울음소리 때문에 잠이 올 것 같지 않다.왕버드나무는 너무 심하게 말한 것 같아 후회를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오리연이든 검은 비닐봉지든 왕버드나무에겐 모두 불청객일 뿐이니까.“비닐봉지 씨는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어요?” 울음이 잦아들쯤 가오리연이 몸을 덜덜 떨며 말을 걸었다.힘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다.

“저는 어떤 아주머니의 저녁 찬거리를 가득 담았던 비닐봉지에요.제 안에는 고등어, 양파, 배추가 들어 있었어요.아주머니는 저를 들고 골목길을 걸어가면서 콧노래까지 불렀어요.저도 흥이 났어요.누군가에게 행복을 실어 나른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아니까요.그런데 집까지 거의 다 왔을 때 저는 그만 터지고 말았어요.아주머니가 한꺼번에 너무 많이 담았기 때문이죠.”

“에취, 에취.아, 죄송해요.하여간 욕심 많은 아주머니네요.조금씩만 담지.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그날 저녁 저는 바로 버려졌어요.재활용센터로 보내지면 좋겠지만 그마저도 바랄 수 없었어요.왜냐하면 찢어지면서 저같은 비닐봉지들은 완전히 구제불능 쓰레기가 되어 버리거든요.”

비닐봉지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가오리연도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저는 요 아랫 마을에 사는 유치원생 현일이가 만든 연이에요.저라고 왜 꿈이 없었겠어요.어젯밤에 현일이와 현일이 형이 저를 만들어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잠들었을 때 저는 다짐했어요.새들보다 더 높이 날아보자고.이왕 연으로 태어났으니 마음껏 하늘을 날아서 밤하늘의 별에까지 가보자고.”

“아, 가오리연 씨는 하늘을 날 수 있으니까 참 좋겠어요.저는 왜 그런 생각을 한 번도 못했을까요.바람이 불면 저도 몸이 가득 부풀어서 제 몸이 꼭 커다란 비행선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지만……”

비닐봉지가 말끝을 흐린다.가오리연도 가만히 훌쩍이고만 있다.

왕버드나무는 잠을 자는 척 눈을 감고 비닐봉지와 가오리연의 이야기를 다 들었다.11월 가을 하늘을 날아 따뜻한 남쪽 나라로 날아간다던 철새들을 부러워하던 때가 떠올랐다.그날은 하루 종일 마음이 심란해서 하늘만 올려다보았다.아무도 모르게 가지를 흔들며 새처럼 날아오르는 흉내를 내보던 일도 떠올랐다.

“나도 한때는 이 섬을 떠나보는 것이 소원이었지.” 왕버드나무는 잠시 목을 가누고 이야기를 꺼낸다.놀란 비닐봉지와 가오리연이 두 귀를 쫑긋 세운다.

“태어나면서부터 나는 줄곧 왕버드나무였고 언제나 이 섬 안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지.저수지 주변에 심겨진 나무하고도 친구가 되고 싶었지만 너무 멀어서 내 말이 들리지도 않아.이젠 꼬마 애들 돌멩이나 맞고 있어야 하다니.여긴 너무 답답해.더 늙기 전에 이 섬을 떠나보고 싶어.” 셋은 속마음을 다 털어놓았다.하지만 셋은 똑같이 슬프다.누구도 이 섬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눈보라는 사나운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몰아쳤다.산도, 길도, 집들도 모두 하얗다.검은 비닐봉지와 가오리연은 거센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린다.아침이 와도 변하는 건 없겠지만.

왕버드나무는 가만히 생각한다.어쩌면 가오리연과 비닐봉지를 자신에게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왕버드나무는 오랜만에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아무도 없는 섬에 또 다시 혼자 남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두 친구가 원하는 게 뭔지 아는 왕버드나무는 고민이 되었다.

‘영 방법이 없는 건 아닌데……안돼.그건 너무 위험해.하지만 누군가의 소원을 들어주는 건 좋은 일이잖아.그래도 그렇지.그러다간 내년 봄을 못 볼지도 몰라.’

왕버드나무는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아니야.그건 안 될 생각이야.나는 내년에 꼭 새 잎을 틔울 거야.저대로 내버려두면 저 친구들도 포기하겠지.그럼 내게도 친구가 생기고 외롭지 않을 테니 좋은 일이지 뭐.’

그리고 검은 비닐봉지와 가오리연에게 물었다.

“얘들아, 그냥 여기서 살면 어떻겠니? 어차피 너희들도 다시 땅에 내려앉게 될 거야.이제 아무도 너희들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없단 말이야.” “할아버지,

강원의 역사展

이코노미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