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아라산코우 접경마을인 카자흐스탄 드루즈바역에서 오후 3시에 출발한 우루무치발 알마아타행 국제열차는 16시간만인 다음날 오전 7시40분 알마아타 역에 여장을 풀었다.
승강장에서 바라본 알마아타 역은 유럽풍의 석조건물로 베이징역같은 웅장한 맛은 없지만, 말을 탄 「아브라이 한」 왕의 동상이 역 광장을 지키고 여관이나 상점 대신 주변엔 숲이 우거져, 이곳이 새로운 문화권임을 실감케 했다.
승강장을 벗어나 역 건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공중전화 안내원이었다.
말쑥한 정장 차림의 중년여성이 전화라고 쓴 큰 종이를 목에 걸고 줄지어선 사람들을 위해 대신 다이얼을 돌려주고 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진지했다. 전화 거는데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건 아니지만, 역내에 공중전화가 한대 뿐이다 보니 이런 직업까지 생겨난 것이다.
알마아타(카자흐어로는 「알마티」는 러시아어로 「사과(알마)」의 「아버지(아타)」란 뜻이다. 가로수를 덩치 큰 사과나무가 대신할 정도니 그럴만도 했다. 하지만 알마아타의 역사는 이 사과나무 굵기처럼 그렇게 깊지는 않다.
과거 카스피해에서 중국 톈산 북동지역까지 실크로드를 오가던 대상들이 잠시 쉬어가던 중간기착지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100여년전 러시아 군인들에 의해 갑작스레 도시가 건설됐는데 그것이 알마아타이다. 이후 알마아타는 1998년 아스타나로 천도하기 전까지 카자흐스탄의 수도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알마아타에 들어서면 낯익은 이름의 외국간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미국 일본은 물론 특히 삼성 LG 대우 등 한국기업의 간판들을 흔히 접하게 되는데 그들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풍부한 자원 때문이다.
카자흐스탄은 한반도의 12배에 이르는 영토에 막대한 양의 석유와 비철금속 등을 보유하고 있다. 광물중 망간, 크롬은 전 세계 매장량의 3분의 1이 이곳에 있고 텅스텐, 납은 CIS 전체의 절반을 갖고 있다. 특히 지난해 7월엔 동카샤간에서 발견된 유전은 매장량이 120억t에 달해 지난 30년간 전세계에서 발견된 유전중 최대규모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유전 하나로 카자흐스탄은 이란에 버금가는 세계 5대 석유자원 보유국으로 발돋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구 1,500여만명의 카자흐스탄은 국민 1인당 GNP가 1,066달러에 불과할 정도로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으니, 이는 옛 소련이 전략적으로 자원이 풍부한 이곳에 산업기반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자원과 기술이 결합하면 다루기 힘들어진다는 전략적 이유에서 였다. 때문에 「자원을 갖고도 쓸 줄 모르는 열등국가」라는 빈축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개방정책으로 외국 기업들이 앞다퉈 자원개발에 뛰어 들기 시작했다. 특히 한국이 그 주도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1993년부터 1999년까지 외국인 총 투자금액이 97억달러(1995년 이후 집중)인데, 그중 한국이 14억9,400만달러로 미국(32억600만달러)에 이어 두번째를 기록했다. 삼성물산이 경영하고 있는 제스카즈간 구리광산의 경우 고용인력만 6만명에 달해 카자흐스탄 최대 고용업체로 자리하고 있다. 제스카즈간 시의 12만명 인구와 발카쉬시 6만 인구가 이 광산하나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을 정도다.
삼성 이외에도 LG와 대우전자, 대우자동차, 신동아 등이 진출해 있으며 알마아타에서 가장 높은 빌딩인 카자흐스탄호텔의 카지노까지 한국인이 운영한다.
한편 카자흐스탄의 철도는 그 대부분이 옛 소련이 건설한 것으로 1991년 독립과 더불어 운영권을 넘겨 받긴 했지만 경영미숙과 투자여력 부족으로 현상유지조차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도시간 평균거리가 1,000㎞에 이를 정도로 땅이 넓다 보니 관리가 어렵고 이에 정부가 나서 경영합리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전체 공공부문 고용의 절반 이상을 철도가 차지할 정도로 비효율을 면치 못하고 있다. 총연장 1만5,000㎞의 철길이 중국,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키르키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과 연결돼 있다고는 하지만 중국과 철도운행이 이뤄진 게 10년전이고 투르크메니스탄과는 불편한 관계 때문에 단절된 상태다.
카자흐 물류대학 알렉세이 다브도비치 모나스트르스키 부총장은 『시설낙후에도 불구하고 철도가 전체 물류수송의 75%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유럽은행의 투자로 3년전부터 알마아타에서 아스타나까지 시설현대화 작업을 하는 등 외자유치를 통한 시설개선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기진기자 kkj99@
사진=김영수기자 yskim@
미니박스-공무원 부패
「실크로드」는 아름다운 이름 덕분에 동경의 대상으로만 다가온다. 하지만 부산에서 철길로 유럽까지 가기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시설 문제보다 오히려 공무원들의 부패가 가장 큰 장애가 아닐 수 없다. 취재팀이 중국 아라산코우를 떠나 카자흐스탄의 국경마을 드루즈바(러시아어로 「우정」이란 뜻이다)에 들어선 것은 토요일 오전 9시30분께였다.
마땅한 교통편이 없어 트럭을 얻어 타고 국경을 넘었다. 그런데 도로세관에 들어서자 마자 한 직원이 취재진에게 다가왔다. 그리곤 방으로 데려가더니 펜으로 손바닥에다 「200」을 쓴 다음 취재진의 눈앞에 들이댔다. 중국 인민폐로 200원을 달라는 것이었다. 입국에 수수료가 필요한 것인가 착각한 취재팀은 선뜻 돈을 지불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돈을 받고 방을 나간 그 직원이 상관을 데리고 나타나 국경을 넘으려면 100달러를 내라는 것이었다. 「$100」을 쓴 손바닥을 흔들어댔다.
취재팀이 거부하자 에이즈에 걸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 보라는가 하면 여권이 위조된 것 같다며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요컨대 돈을 내든지 중국으로 돌아가든지 둘중 하나를 택하라는 것이었다.
돈을 뜯기고 만 취재팀은 세관검사를 하면서 20달러를 빼앗기고서야 방을 나설 수 있었다. 그들 한달월급이 40달러 가량이니 이날 그들은 한몫 잡은셈이 었다. .
취재팀은 그때부터 돈을 받지 못한 직원들을 상대로 힘겨운 씨름을 해야 했다. 『우리앞을 지나가려면 돈을 내라』는 것이었고 사무실에서 도박판을 벌이던 직원들까지 뛰쳐나와 손을 내밀었다.
상황이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검문소가 사막 한가운데 있고 주말이다보니 교통수단이 없었다. 취재진은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뒤에서 자동차 경적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돈뜯기에 실패한 직원 중 하나였다. 호텔까지 태워주는데 20달러라고 했다. 흥정끝에 중국돈 100원에 합의, 차에 올랐다.
그런데 차가 출발하는가 싶더니 우회전을 했고 바로 그곳에 호텔이 있는게 아닌가. 모래 언덕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도 끝내 돈을 챙기고만 것이다.
다음날 드루즈바 역에 기차표를 사러간 취재진은 여자 역무원이 던진 한마디에 대합실 의자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외국인에게는 표를 팔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또 「돈」이었다. 중국 역무원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기차에 오른 취재팀의 머리엔 「철의 실크로드」가 자칫 환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김기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