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어머니 손을 붙잡고 오르던 춘천 중앙시장과 육림고개는 소음과 냄새, 사람들로 가득했다.
길가 닭장 속 닭들은 눈을 크게 뜨고 두리번거렸고 그 앞에서는 아주머니들과 손님들의 흥정이 치열하게 이어졌다. 육림극장으로 향하는 언덕길은 늘 질척거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머니 손을 놓치면 금세 길을 잃을 것 같은, 북적이고 혼잡한 공간이었다.
50년이 지난 지금, 재래시장은 전통시장으로 바뀌었다. 도로는 넓어지고 전깃줄은 말끔히 정리됐다. 상점들도 이제 길가가 아니라 건물 속으로 들어갔다. 한때는 들어가기조차 두렵던 화장실도 이제는 추억 속 장면이 됐다.
하지만 시장의 현실은 여전히 쉽지 않다. 예전 시장은 불편했지만 활력이 있었다. 지금은 환경은 나아졌으되 활력은 줄어들었다. 도시가 커지고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이 늘면서 시장은 서서히 주인공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여전히 잘 버티는 시장도 있지만 많은 시장이 상인들과 함께 나이를 먹으며 점점 뒷자리로 물러나고 있다.
그동안 시장을 살리겠다며 많은 예산이 투입됐지만 결과는 우리가 매일 보는 모습 그대로다. 제한된 예산으로는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기 어려웠고, 관행적인 환경 정비나 행사 위주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시장이 사라질 수는 없다. 생명체가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남듯 시장도 시대 변화에 맞게 달라져야 한다. 무엇보다 모든 상권마다 역할과 성격이 다르기에 해법도 획일적일 수 없다.
춘천의 심장인 ‘명동·중앙시장’은 도시의 얼굴이다. 하지만 오래된 건물들이 빽빽해 현대적인 상업 시설이 들어설 공간이 부족하다.
다시 강원 수부 도시의 상징이 되려면 규제를 합리적으로 풀어야 한다. 민간 자본이 들어와 낡은 건물을 정비하고 주차장과 편의시설을 갖춘 현대식 랜드마크를 만들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 물론 무작정 개발이 아니라 도시와 상권의 정체성을 지키는 범위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번개시장’과 ‘서부시장’은 접근성과 연결성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과거 소양강을 건너와 ‘번개처럼’ 장을 보던 시절과는 교통 환경이 달라졌다. 번개시장이 다시 살아나려면 캠프페이지 주변을 정주형 주거지로 바꾸고 걸어서 시장을 찾을 수 있는 생활권 인구를 늘려야 한다. 시장과 동네를 잇는 보행 동선을 정비해 주민이 편하게 오갈 수 있는 ‘슬세권’을 만들어야 한다. 서부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여기에 춘천역과 소양강변, 후평동을 잇는 대중교통 노선이 더해진다면 이동 수요와 지역 발전 모두를 견인할 수 있다.
국내 연구에서도 전통시장의 경제 성과가 시장 내부 요인만이 아니라 ‘입지와 주변 환경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2018년 서울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시장 운영 방식뿐 아니라 주변 생활권과 입지 특성이 점포당 매출과 공실률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는 전통시장 정책이 단순한 시설 개선을 넘어서 시장과 주거·보행·교통이 하나의 생활권으로 연결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지금 시장에 필요한 건 단순한 지원이 아니다. 시장의 뼈대를 다시 세우는 큰 변화다. 핵심은 접근성 강화, 규제 혁파, 그리고 생활권과의 연결이다. 춘천의 시장(Market)이 살아야 춘천 경제가 산다. 낡은 천막 아래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연민의 대상이 아니라 누구나 편하게 찾아와 머물고 싶은 ‘동경(憧憬)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것이 춘천 전통시장이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