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월요칼럼]미국 트럼프 대통령 취임 100일의 기록

정구연 강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오는 4월 29일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는 날이다. 지난 1월 20일 취임식을 치룬 이후 트럼프 대통령이 보여준 행보는 전세계를 혼란스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글로벌 리더십의 궐위 상태라 불릴 만큼,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까지 미국이 기꺼이 감내해왔던 많은 역할들에 대해 책임있는 태도를 보이고 있지 않다. 인권, 민주주의, 개발원조, 기후변화 등, 미국의 역할 공백은 특히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성장과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보편관세, 상호관세 등을 통해 무역 파트너 국가들과의 협상을 개시하고 있는데, 이는 파트너 국가들뿐만 아니라 미국 자국 내 인플레이션과 산업 구조 전반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 세계보건기구, 파리기후협약 등 기존 국제협약과 기구로부터의 탈퇴 및 공약 철회 등은 미국이 2차대전 이후 만들어 놓은 국제질서를 스스로 무너뜨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러한 자국 우선주의 조치들로 인해 미국이 ‘위대하게’될 것이라 예측하는 것 같으나, 오히려 그 반대의 결과로 귀결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국내외 많은 전문가들은 미국의 후퇴에 대비하기 위한 다극체제 질서의 형태와 동학에 대해 전망하고 있다. 유의해야할 점은, 미국의 쇠퇴로 인해 중국이 부상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또한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궐위로 인해 한국과 같은 중견국이 중국에 편승한다거나 미국과 중국사이에 균형외교를 취해야한다는 정책 제안은 시대착오적이다. 미국의 태도를 고립주의로의 회귀라고 판단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기존의 질서 유지에 대한 자국의 공약을 줄여나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그러한 점에 있어 자국에게 유익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에 대한 선별적인 선택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공약 후퇴로 인해 국제사회가 목도할 최악의 시나리오는 미국이 러시아, 중국 등에게 영향권 분할을 허용하는 상황에 이르는 것으로, 과거보다 훨씬 갈등과 폭력이 용인되는 상황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강대국 정치의 귀환과 영향권 분할의 상황이 카오스적인 무질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 19세기 유럽의 경우 패권국이 부재한 상황 속에서도 세력균형을 이뤄왔으며, 협조체제 구축 등을 통해 규칙과 규범을 마련하며 불확실성을 제거하려 노력해왔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 국제질서를 경시하며 자국이익 극대화에 천착하고 있지만 그것이 지난 80년간 구축해온 모든 국제질서가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80년의 시간 동안 그러한 질서 속에서 생존해온 국가들의 이익도 한순간에 바뀌어질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의 의지이다. 한국을 포함해 유럽연합, 일본, 호주 등 중견국들이 현재의 규칙기반 국제질서를 유지할 의지가 있는가의 여부인데, 트럼프 행정부 100일의 행보는 이들 국가로 하여금 더욱 협력할 의지를 높이게 했다.

관건은 앞으로 중견국들이 지금의 질서를 얼마나 쇄신하여 유지할 것인가의 여부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미국이 향후 협력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국제적인 영향력도 빠르게 상실하게 될 것임을 주지시켜야할 것이다. 세계은행 본부가 미국에서 일본으로 옮겨지는 상황을 워싱턴은 감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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