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반

[역사속의 강원인물]애달픈 사랑이야기 깃든 금강정서 비련의 여인 노옥을 만났다

소설과 김도연과 떠나는 고경춘 찾아가는 길

◇(1)영월 동강 낙화암 위 금강공원에 세워져 있는 금강정. 이곳에서 이수학이 강 건너편 경춘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2)영월 금강공원에 관기였던 경춘의 절개를 기리는 '월기경춘순절지처'비(碑)가 세워져 있다. (3)비 전면과 후면 탁본.

영월 낙화암(花巖)에 도착했다

절벽 밑을 내려다보니 현기증이 났다

정선에서 흘러온 동강이 어라연을 지나

낙화암의 아랫도리를 서늘하게 적시고 있었다

물 건너편에는 갈대인지 억새인지가

햇살을 받아 금방이라도 타버릴 것만 같았다

동강의 옛날 이름은 금장강(錦障江)이었다

금강정(錦江亭) 주변은 단풍으로 물들기 직전이었다

나는 낙화암 일대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곳에는 크고 우람한 비(碑)들이 유달리 많았다

경춘(瓊春)의 초라한 비도 그곳에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흐른 터라 알아보기 힘들었다

비석은 두 동강이 난 것을 붙여놓은 상태였다

나는 비 너머의 벼랑과 그 아래 동강을 내려다보고

금강정으로 발길을 되돌렸다

금강정에는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영월 낙화암(花巖)에 도착했다. 절벽 밑을 내려다보니 현기증이 났다. 정선에서 흘러온 동강이 어라연을 지나 낙화암의 아랫도리를 서늘하게 적시고 있었다. 물 건너편에는 갈대인지 억새인지가 구월의 마지막 햇살을 받아 금방이라도 하르르 타버릴 것만 같았다. 동강의 옛날 이름은 금장강(錦障江)이었다. 금강정(錦江亭) 주변의 나무들은 단풍으로 물들기 직전이었다. 나는 낙화암 일대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곳에는 크고 우람한 비(碑)들이 유달리 많았다. 경춘(瓊春), 그러니까 고노옥(高玉)의 초라한 비도 그곳에 있었다. 앞면에는 '월기경춘순절지처(越妓瓊春殉節之處)'라 적혀 있었고 뒷면에는 그 전말의 내용을 기록해 놓았는데 세월이 많이 흐른 터라 알아보기 힘들었다. 더욱이 비석은 두 동강이 난 것을 다시 붙여놓은 상태였다. 나는 비 너머의 벼랑과 그 아래의 동강을 내려다보고 금강정으로 발길을 되돌렸다. 금강정에는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심호흡을 하고 마루에 올라섰다. 세 사람은 커다란 삼각형의 각 꼭짓점에 말없이 앉아 있었는데 내가 강을 등지고 앉자 사각형이 되었다.

나는 혀로 입술을 적신 뒤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 : 어려운 걸음을 선뜻 해주신 세 분께 감사드립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란 거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한 번은 만나야 할 자리일 거 같아서 부탁을 드렸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난처한 질문은 답변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세 분이 이렇게 한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 해도 저도 만족합니다.

맞은편 자리의 경춘은 내 등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고 경춘의 오른편 이수학(李秀鶴)은 두 손으로 얼굴을 쓰다듬었다. 경춘의 왼편 신광수(申光洙)는 지그시 눈을 감은 채였다. 구월의 메마른 바람이 금강정을 쓸고 지나갔다.

나 : 경춘은 저 건너편 마을이 고향이라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영월역이 들어서고 기찻길이 놓였는데…….

경춘 : 초가집들 사이에 뽕나무가 많았던 마을이었지요. 아침저녁이면 금장강에서 물안개가 피어오르는데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지요. 부모님은 제가 단종이 점지해준 덕으로 태어났다 해서 이름을 노옥이라 지어주었습니다. 행복했던 날들이었지요. 그런데 제가 다섯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몇 년 뒤 아버지마저 명을 달리하셨어요. 저는 어린 동생과 함께 이웃에 살던 추월이라는 기생의 수양딸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저 역시 기생의 길로 들어섰지요. 기명은 경춘입니다.

나 : 영월 부사의 아들인 시랑(侍郞) 이수학은 언제 만났습니까?

경춘 : (경춘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어느 날 저 건너편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데 시랑께서 나룻배를 타고 건너왔습니다.

나 : 그렇게 사랑이 시작된 거로군요.

경춘 : 지금 생각해보니…… 저 혼자 짝사랑을 한 것 같네요.

이수학 : 무슨 소릴 하는 거요? 나도 경춘을 사랑했단 말이오! 내가 준, 백년가약을 약속한 편지를 잊었소?

경춘 : 시랑께선 저를 사랑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랑은 글로 적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신광수 : 사랑은 무슨 사랑! 시랑은 미모의 경춘을 잠시 데리고 논 거야. 아니, 양반가의 자제가 뭐가 모자라 기생을 사랑해. 백년가약을 약속했다고? 양반이 기생에게?

나 : 여러분, 조금만 흥분을 가라앉히십시오. 일단 제가 먼저 정리하겠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1772년(영조 48) 7월29일 이수학은 부친이 한양으로 영전되자 과거 급제 후 꼭 찾아오겠다는 글을 전해주고 한양으로 떠났습니다. 이후 당대의 문장가이자 시인인 신광수가 부사로 부임했습니다. 신광수는 영월에 부임해 이런 시를 지었습니다. '영월 깊은 산속에 소쩍새 우는 소리 / 네 어찌 괴롭게 울어 삼경까지 지새우는가 / 꽃 사이의 피울음을 이제 토하지 말라 / 만가지 장릉(莊陵)의 한이 풀린 지 오래이다.'

신광수 : (수염을 쓰다듬으며) 명시 중의 명시네! 그거 말고도 많아. 들려줄까?

나 : 부사께선 경춘이 시랑과 맺은 언약을 알고 있음에도 수청을 들라 했습니다. 그 까닭을 말해주시겠습니까?

신광수 : 당시 경춘은 관기였소. 영월 부사가 관기에게 수청을 들게 하는 건 당연한 일이오. 대체 내가 뭘 잘못했단 말이오?

나 : 그 일로 삭탈관직을 당했다고 승정원일기에 기록돼 있습니다.

신광수 : 그건 내가 시 창작에 몰두하느라 부사직을 다소 방임해서 벌어진 거지 경춘의 일과는 상관이 없소. 나는 2년 뒤에 다시 복직되었단 말이오.

나 : 알겠습니다. 하여튼 경춘은 부사의 수청 요구로 인해 고통을 겪다가 결국 16세의 어린나이에 영월 낙화암에서 몸을 던졌습니다. 시랑이 준 증표를 간직한 채. 시랑에게 묻겠습니다. 정말 경춘을 사랑했습니까?

이수학 : 당연히 사랑했지요!

나 : 그동안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제가 보기엔 왠지 시랑의 약속이 무책임해 보입니다. 과거에 급제한 후 찾아오겠다는 약속은 마치 요즘 남자들이 애인을 떼어놓을 때 흔히 써먹는 몇 가지 말과 비슷해서 하는 얘깁니다.

이수학 : 나를 난봉꾼 취급하지 마시오!

나 : 그럼 그때 왜 경춘과 함께 한양으로 가지 않았습니까?

이수학 : 그건…… 내 처지 때문이었습니다. 함께 가고 싶었지만 부모님께 말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과거에 급제한 것도 아니니 부모님도 분명 반대했을 겁니다. 그리고 아버님이 그렇게 빨리 영월을 떠날 줄 몰랐습니다. 저도 어쩔 수가 없었어요. 제가 용기가 없었던 건 사실이지만 경춘을 사랑한 건 진심입니다! 이 자리에서 혈서를 쓰라면 쓰겠습니다.

나 : 경춘은 낙화암에서 몸을 던져 사랑을 지켰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부사께선 어떤 심정이었습니까?

신광수 : 죽음에 대해선 할 말이 없습니다. 사실 경춘이 그렇게까지 전임 부사의 아들을 마음에 두고 있었는지는 사후에야 알았습니다. 사실 나는 일찍 아내와 사별한 터라 많이 외로운 처지였소. 영월 부사로 부임해 관기인 경춘을 보자 나 역시 반했습니다. 그게 사랑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나 경춘의 마음속엔 이미 이수학이 자리하고 있어 내가 들어설 자리는 없었습니다.

나 : 시랑은 서울에 간 뒤 경춘의 뒷얘기를 들었습니까?

이수학 : 몇 달 뒤에 소식을 접했습니다.

나 : 무덤에 찾아오진 않았지요?

이수학 : ……예. 경춘, 나를 용서해 주시오.

경춘 : …….

나 : 그 후 시랑은 과거에 급제하셨습니까?

이수학 : ……예.

나 : (경춘에게) 마지막으로 하실 말이 있습니까?

경춘 : 저는 미천한 신분의 기생이었습니다. 조선사회에서 양민도 못 되는 이른바 팔천(八賤)의 하나였습니다. 다만 우리에게 위안이 있다면 양반의 부녀자들과 같이 비단옷에 노리개를 찰 수 있었다는 점, 사대부들과 연애를 할 수 있다는 점, 고관대작의 첩으로 들어가면 친정을 살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된 이가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우리에겐 이별과 배신이 훨씬 가까이 있었지요. 순절비? 도대체 누구를 위한 순절이란 말입니까? 저 물 건너편이 제가 태어난 곳입니다. 많이 변했군요. 하지만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도 있겠지요. 기차가 지나가는군요. 저 기차를 타면 한양에서 영월까지 반나절도 안 걸리겠지요. 당시에 기차가 있었다면 시랑께선 정녕 저를 보려고 달려왔을까요? 달려오지 않았을 겁니다. 저는 그 사실을 알고 낙화암에서 뛰어내렸던 것입니다.

나는 영월을 떠나지 못하고 낙화암 건너편에서 낙화암을 바라보았다. 아직 물들지 못한 바위절벽의 나뭇잎들이 바람에 우수수 동강으로 투신하는 오후, 어린 노옥은 갈대숲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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