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말하기 전, 종교가 국가주의에 편승해 전쟁에 협력했던 뼈아픈 역사부터 철저히 직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찬수 가톨릭대 교수는 지난달 30일 오대산 월정사 화엄루에서 열린 ‘2026 오대산 세계종교평화포럼’에서 “종교가 국가와 민족에 종속될 때 사랑과 자비는 사라지고 전쟁 수행 논리가 종교적 언어로 둔갑한다”고 비판하며 이같이 밝혔다.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본사 월정사와 화엄선연구소, 아시아종교평화학회, 대전환포럼이 공동 주최한 이날 행사는 ‘전쟁의 시대, 월정사 세계종교학자들의 대화’를 주제로 진행됐다. 포럼은 종교가 왜 반복적으로 폭력의 편에 섰는지를 묻고, 평화를 향한 집단적 자기반성을 도모하는 장으로 꾸며졌다.
전문가들은 역사 속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종교의 어두운 이면을 비판했다. 이찬수 교수가 현실 권력에 종속된 종교를 비판하며 사랑과 자비를 구현하는 ‘심층종교’를 강조한 데 이어, 홍미정 단국대 교수는 십자군 전쟁을 종교전쟁을 빙자한 정치적 패권전쟁으로 규정했다. 이병성 연세대 교수는 유럽 30년 전쟁을 통해 종교 절대주의와 광신주의가 낳은 비극을 조명했다.
아시아 근현대사를 향한 뼈아픈 성찰도 심도 있게 다뤄졌다. 원영상 원광대 교수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불교가 천황제 국가주의와 결탁해 불교의 핵심 교리를 왜곡한 행태를 두고 ‘악마의 교학’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문유정 동국대 외래교수는 현대의 로힝야 난민 사태가 식민주의와 종교 편견, 디지털 혐오가 중첩된 폭력 구조의 결과라며 국제사회의 선택적 기억과 침묵을 꼬집었다. 정상교 금강대 교수는 전쟁의 근원이 결국 인간의 탐욕, 분노, 무지라는 ‘탐진치’에 있다며, 마음을 관찰하고 전환하는 실질적인 수행을 통한 평화 구현을 역설했다.
월정사 화엄선연구소장 향산 스님은 개회사에서 시대가 위기일수록 종교가 생명과 공존, 자비와 연대의 등불이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포럼은 ‘기도가 총성이 되지 않도록’을 주제로 한 평화 메시지를 채택하며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