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홍섭의 바다 편지]남애, 고래사냥, 그리고 안성기  

- 이홍섭 시인

누구에게나 가슴에 품고 있는 바다가 한두 곳쯤 있을 것입니다. 저에게는 양양군의 남애 바다가 그런 곳입니다. 넘치지 않고 품 안에 쏙 들어오는 항구의 풍경은 다정하고, 애절함이 묻어있으면서도 말끔하기 그지없는 ‘남애’라는 말의 어감은 다감하기까지 합니다.

강릉에 사는 저는, 속초나 춘천 쪽에서 일을 보고 돌아올 때 종종 이곳 남애에서 일박을 하곤 했습니다.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 끝 모텔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나면 전날까지 삶을 짓누르던 부산함과 비루함이 사라져버리고, 그 자리에 새살처럼 삶의 다정다감함이 돋아나곤 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다음과 같이 시작하는 시를 쓴 적이 있습니다. “어쩌면 없는 당신을 찾아 이곳에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없지만 남애, 라고 부르면/ 왠지 금방이라도 따뜻해질 것 같아 이곳에 왔습니다”(남애)

오늘 남애 바다를 찾은 것은 순전히 얼마 전에 영면에 드신 안성기 배우 때문입니다. 남애는 그가 출연한 영화 ‘고래사냥’의 촬영지로 널리 알려졌고, 저와 그분은 ‘강릉국제영화제’를 계기로 여러 번 인사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1984년에 개봉한 ‘고래사냥’은 그해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80년대 대표 영화 중 하나입니다. 그는 이 영화에서 노회한 노숙자 민우 역을 맡았습니다. 당시 삼십 대 중반으로 접어들던 그는, 영화에 처음 출연한 이십 대 후반의 가수 김수철(병태 역)과 푸릇푸릇한 이십 대 중반의 이미숙(춘자 역)을 앞에서 당겨주고 뒤에서 밀어주며 영화를 완성해나갔습니다. 그는 이 영화에서도 특유의 ‘선한 아우라’를 한껏 발산했습니다.

제가 공적 소임을 맡고 있을 때 많은 분과 힘을 합쳐 강릉국제영화제의 닻을 올렸는데 그때 안성기 배우를 자문위원장으로 모셨습니다. 당시 강릉국제영화제는 김동호 조직위원장, 안성기 자문위원장, 김홍준 예술감독의 삼두마차가 이끌었는데 영화제 역사상 최고의 라인업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서울의 한 식당에서 안성기 배우를 처음 만났는데 식사 내내 영화에서 보았던 그 특유의 ‘선한 아우라’가 식당 내부를 감쌌습니다. 이 선한 아우라는 이후 영화제 폐막식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는 “강릉은 외가가 있는 곳이어서 어렸을 때부터 인연이 깊다”며 따뜻한 미소로 자문위원장직을 수락했지만, 남들 같으면 단칼에 거절했을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십여 년 전,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안성기영화박물관’ 때문에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이 박물관은 안성기 부부와 많은 축하객이 모인 가운데 강릉에서 기공식까지 열었으나 끝내 개관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 일과 관련해서 끝까지 침묵을 지켰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비판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죄송하게도 영화제 역시 3회에서 끝나고 말았습니다. 영면 이후 확인해보니 영화제가 출범한 2019년 바로 그 해가 그가 혈액암 판정을 받고 투병에 들어갔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저를 비롯한 영화제 관계자 그 누구도 이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의 선한 아우라와 따뜻한 미소가 병색까지 지워버릴 정도로 환했기 때문입니다.

‘고래사냥’의 후반부에 민우가 병태에게 “고래는 찾았니?”라고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병태는 “고래, 내 마음속에 있었어요”라고 답합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병태의 깨달음을 얻은 듯한 대답보다 민우의 따뜻한 질문과 목소리에 더 애정이 갔습니다. 이 질문과 목소리에 ‘국민 배우’ 안성기가 평생 쌓아온 겸손과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담겨있었기 때문입니다. 명동성당에서 열린 장례 미사와 영결식, 그리고 조문객들이 남긴 추모사들은 그의 선하고 맑았던 삶을 보증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저는 고래가 가득한 이곳 남애 바다에서 두손모아 그를 추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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