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 낯선 타국 땅이었던 영국에서의 첫 생활은 유학생과 외국인노동자의 경계에 있었다.
오전에는 어학원에서 영어를 배우고, 오후 3시부터 저녁 9시까지는 직장에서 땀을 흘리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그 직장에서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는데, 출근하고 근무복을 입고 일을 시작하려 계단을 내려오다 발을 헛디뎌 계단에서 넘어졌다. 팔이 매우 아파서 혹시라도 골절이 아닌지 염려되어 담당 매니저에게 서툰 영어로 병원에 가봐야겠다고 했더니 마침 직장 근처에 큰 병원이 있다고 거기에 가보라고 했다.
엑스레이 촬영을 하고 다행히 골절이 아닌 것은 확인되어 다시 직장에 돌아와 매니저에게 병원 다녀온 이야기를 하고 일을 시작하려고 했다. 그러자 매니저가 오늘은 일하면 안 된다고 집에 돌아가서 쉬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혹시 오늘 일당이 차감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되어 일하겠다고 했더니, 염려하지 말고 가서 쉬라고 병가로 처리되니 보수는 염려 말라고, 절대 일해서는 안 된다고 강제로 집으로 돌려보냈다. 노동자를 대체 가능한 부품이 아닌, 보호받아야 할 존엄한 ‘사람’으로 대우하던 그 경험은 26년이 지난 지금도 내 마음속에 선명한 기억의 이정표로 남아있다.
내게 일어난 26년 전의 그 일을 되돌아보며 2025년 지난 해 내 고향 원주에서 3명의 외국인노동자에게 일어난 일을 되새겨본다. 지난해 1월 25일, 설 연휴를 불과 하루 앞두고 귀래면의 석재공장에서 20대 우즈베키스탄 청년이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졌다. 고국 방문을 이틀 앞두고 들뜬 마음으로 홀로 현장에 투입되었던 그는, '2인 1조 작업'이라는 기본 원칙만 지켜졌더라도 살 수 있었다. 10월 25일, 소초면의 사업장에서 30대 네팔 노동자가 지게차 전복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고국에 두 딸을 둔 가장이었던 그는, 운전면허도 없는 상태에서 제대로 된 안전 교육 하나 없이 지게차 운전대를 잡아야 했다. 11월 5일, 원주시 폐기물 업체에서 40대 몽골 노동자가 기계 이물질을 제거하다 추락해 사망했다. 위험한 기계 점검 중 가동을 멈추는(LOTO) 기본 수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이 일련의 죽음들은 피치 못할 환경에서 일어난 ‘사고’가 아니다. 외국인노동자를 인간이 아닌 산업체의 소모품으로, 언제든 저렴하게 대체할 수 있는 ‘노동력’으로만 치부해온 우리 사회의 비정한 결과물이다.
우리는 문화강국과 정치 민주화를 자부하지만, 우리 곁의 이웃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는 외면해왔다. 외국인노동자는 우리의 필요에 의해 요청되었고, 이미 30년 넘게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 우리 곁을 지켜온 명백한 ‘이웃’이다. 인권과 안전이라는 권리는 커다란 둑과 같아서, 어느 한 곳에 구멍이 나면 결국 제방 전체가 무너지는 법이다. 이웃의 권리가 침해되는 것을 방관한다면, 그다음 차례는 바로 나의 권리가 될 것이다.
효율과 성과라는 이름 아래 이웃의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행태를 멈춰야 한다. 외국인노동자를 진정한 사회적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 26년 전 내가 영국에서 받았던 그 최소한의 존중을 이제 우리 사회가 담보해야 할 시간이다. 이웃으로 함께 살아가는 법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선진국의 진정한 품격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