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차단을 위해 설치한 철망 울타리가 산양 등 천연기념물은 물론 다른 야생동물의 이동경로까지 차단하며 생태계를 파괴시키고 있다. 특히 바이러스 방역 효과는 떨어지는 반면 막대한 유지보수 비용이 필요해 완전 철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양 철망에 가로막혀 고립=최근 화천의 안동철교와 백암산케이블카 인근 도로에서 천연기념물 산양이 멧돼지 차단 울타리의 뚫린 곳으로 나왔다가 산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길을 헤매는 모습이 잇따라 목격되고 있다. 산양은 산에서 서식하다 계곡으로 내려와 물을 먹고 다시 산으로 올라가는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산양들이 뜻하지 않게 철망 울타리 안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서식지로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실제 ASF 차단 울타리가 산양의 이동을 방해하고 집단폐사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국립생태원이 실시한 모니터링에 따르면 강원도 화천과 양구지역의 울타리 설치 구간에서 산양의 이동 장애 사례가 다수 관찰됐다. 울타리로 이동 통로가 막힌 산양들이 훼손된 울타리를 통과하려는 행동이 118건이나 확인됐다. 반면 울타리가 개방된 곳에서는 산양이 거부반응 없이 먹이활동과 이동을 자유롭게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실효성 낮고 막대한 예산 필요=ASF 차단 울타리는 시간이 갈수록 방역 효과는 떨어지고 생태계까지 파괴하고 있어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정부는 2019년 10월 경기도 연천에서 ASF가 발견되고 전국으로 확산될 것으로 예상되자 1,000억여원의 예산을 투입해 2022년까지 멧돼지 서식지 일대에 울타리를 설치했다. 초기에는 ASF 확산을 최대한 늦추는 효과를 얻었지만 전염성이 높은 특성상 이미 전국 대부분에 바이러스가 퍼졌고 오히려 동물 다양성 감소와 생태계 훼손만 유발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실효성은 낮은 반면 막대한 유지보수 비용도 문제다. 정부와 도내 지자체들이 설치한 강원지역 울타리는 올해 3월말 기준 13개 시·군 1,747㎞에 달하고 유지보수비용은 지난해 17억원에 이어 올해도 8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환경운동단체 관계자는 “멧돼지 차단도 중요하지만 다른 야생동물의 생태학적 원리를 고려하지 않은 게 아쉽다”며 울타리의 완전 철거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