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중언

[언중언]지독하고 잔인한 병

치매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사랑하는 사람을 앗아간다. 어제까지 함께 웃던 부모가 오늘은 낯선 눈빛으로 자녀를 바라본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은 사라지고 감정도 희미해진다. 살아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듯한 상태, 그것이 치매다. 환자에게도 가족에게도 이 병은 지독하게 잔인하다. 누구보다 가까운 사람이 가장 먼 사람이 되는 고통. 그 앞에서 우리는 속수무책이다. ▼‘곡괭이로 하늘을 떠받친다’는 말이 있다. 불가능한 일을 감내해야 하는 현실을 뜻한다. 치매 간병이 꼭 그렇다. 환자는 아파서 힘들고 가족은 돌보느라 지친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때론 화를 내며 어떤 날은 온종일 침묵한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가족은 속이 문드러진다. 사랑하니까, 놓을 수 없으니까 버텨보지만 지칠 대로 지친다. 병보다 먼저 무너지는 것은 가족들이다. 심하면 가정 파탄에 이른다. ▼경제적 부담도 무겁다. 치매는 약만 먹는 병이 아니다. 돌봄이 필요하다. 요양원에 맡기려면 비용이 만만찮고 가족이 직접 돌보자니 생계를 포기해야 한다. 국가에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단순한 푸념이 아니다. 사랑만으로 버틸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많은 가족이 눈물짓는다. ▼ 2023년 말 기준 강원도 내 60세 이상 추정 치매환자는 총 4만398명으로 처음으로 4만명대에 진입했다. 2019년 3만3,132명, 2020년 3만4,927명, 2021년 3만6,813명, 2022년 3만8,676명 등 노인 치매환자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고령화로 노인 인구가 늘어 치매환자 수는 급증하고 있다. 치매, 이제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미래다. 돌봄을 가족의 몫으로만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사회가, 국가가 함께 짊어져야 할 책임이다. 아프지 않도록, 고립되지 않도록,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치매환자와 가족들에게 지금보다 더 많은 손길이 필요하다. 더 이상 혼자 아파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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