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대청봉]소나무와 강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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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백두대간 터전
22개 황장봉표 세웠던
강원도 상징하는 나무

김홍도가 정조에 바친
실경산수화 속에 등장
산림문화 깊이 더해줘

동해안의 소나무는 수려한 경관을 만드는 데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긴 시간 동안 소나무는 동해안을 비롯한 백두대간에 터전을 잡고 살면서 지역을 대변하는 상징으로 굳혀졌다. 소나무가 강원을 떠올리는 이미지가 된 지 오래다. 그러나 이 지역에 산불이 발생할 때마다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한다. 강풍을 타고 휘발성을 지닌 소나무가 주변 지역의 불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아는 나무가 소나무다. 춘천 중도 레고랜드 조성지에 청동기인들이 남긴 집 자리에서 다량의 불탄 소나무가 발견된 것을 보면 오래전부터 주변에서 쉽게 구하는 나무로 집을 짓거나 생활에 활용해 온 것으로 보인다.

소나무는 생활 근거지에 숲을 이루고 있어 일상 생활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동거해 왔다. 우리 민족은 가족의 구성원이 태어나면 금줄에 솔가지를 걸어 무병장수를 기원했다. 소나무는 집을 지을 때도 대들보나 기둥, 서까래용으로 사용됐다. 집 안의 온돌을 데우는 땔감으로 이용했으며, 구황식으로 쌀과 섞어서 송기떡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봄철 날리는 송화 가루는 다식을 만드는 재료로도 활용했으며 뿌리 부근에 기생하는 균근(菌根)에 의해 만들어지는 송이는 아주 고급 식재료로 이용됐다. 또한 뿌리에 생기는 복령도 귀한 약재로 쓰였다. 전통 생활가구인 소반도 소나무로 만들어져 행복을 책임지는 든든한 후원자였다. 삶의 마지막엔 소나무로 만든 관에 들어가 영원한 안식을 맞이하는 등 소나무는 우리 민족 구성원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함께하는 동반자다.

조선 영조 22년(1746년) 전국의 산에 있는 소나무를 왕실용으로 확보하기 위해 황장봉산(黃腸封山)을 정하고 산 입구에 금표(禁標)를 세웠다. 전라도 3개, 경상도 7개, 강원도에는 22개의 황장봉표를 설치해 일반인들이 함부로 소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했다. 그만큼 강원도는 조선 왕실에서 중요시하는 최고의 소나무 생산지였다.

현재도 화천 비수구미, 인제 한계리, 원주 학곡리, 치악산, 영월 법흥사 입구, 황정골, 양양 법수치리, 상월천리, 홍천 내면 명계리 등 10여개의 황장금표와 봉산금표(산삼을 함부로 캐지 못하게 금하는 표시) 등이 산림유산으로 남아 있다.

또한 조선의 최고 화가 단원 김홍도는 정조대왕의 명을 받들어 무신년(戊申年), 1788년 10월에 강원도를 찾아왔다. 60여 일 동안 강원일 일대를 꼼꼼히 돌아보며 임금에게 100여점의 그림을 그려 바쳤다. 평창 성심대, 강릉 구산서원, 경포대, 고성 청간정, 가학정, 동해 무릉계, 울진 월송정 등 당시 그린 실경산수화 속엔 강원의 늠름한 소나무가 그려져 있어 산림문화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강원세계산림엑스포가 ‘세계, 인류의 미래, 산림에서 찾는다’를 주제로 올 9월22일부터 10월22일까지 31일간 설악산 인근 강원도세계잼버리수련장과 인근 4개 시·군에서 열린다. 우리나라의 산림녹화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보기 드문 기록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토 전체가 헐벗었다가 성공적으로 복원된 처음이자 유일한 사례로 행사장에 산림평화관을 조성해 산림 복구와 치산녹화 노력을 보여줄 계획이다.

조선시대 왕실에서 관리·보존했던 산림 역사부터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지나 황폐해진 산림, 1970년대부터 산림녹화사업으로 100억그루 이상을 심은 기록과 현재의 모습 등으로 꾸민다. 강원도는 산림의 수도이자 힐링을 주는 자연친화적인 도시다. 최고의 자연을 품고 있는 강원의 숲 안에 들어 있는 산림문화를 찾아가는 체험 프로그램 등 국보급 숲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소나무는 소중한 강원의 자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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