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0년대 지은 건물 활용
"옛날 분위기 공간 이색적"
SNS 화제…관광객 몰려
산업이 쇠락하고, 노동인구가 떠난 공간은 '폐허'로 남는다. 생산력이 왕성한 청년인구가 찾아오지 않고, 신생아가 나올리 만무한 소멸지가 된다. 이렇게 버려진 '유휴(遊休)공간'을 활용한 청년 창업이 세계적인 트렌드다. 공간의 매력을 살려 하루 수백명이 찾는 관광 명소가 되기도 한다. 속초의 '칠성 조선소 살롱'은 도내 산업 쇠퇴지 재생, 청년 창업가 발굴·육성에 많은 시사점을 주는 사례다.
■허름한 옛 분위기가 좋다는 관광객들=지난 2일 오전, 빛바랜 페인트 간판을 보고 골목길에서 겨우 찾은 속초 칠성 조선소.
나무 대문을 지나니 소형 선박이 오가던 녹슨 선로와 청초호가 보였다. 오른쪽에는 1970년대 슬레이트 지붕의 낡은 외관의 작은 단독주택이 있었다. 유리창문 너머로 커피를 마시고, 사진을 찍는 손님들이 보였다. 살롱이 꽉 차, 자리를 못 잡은 이들은 입구 왼쪽의 1950년대 건물인 '칠성 조선소'로 갔다.
소형 선박을 만들 때 쓰던 윈치, 샤클, 와이어가 나뒹굴고 있는 1층을 유리벽 너머로 구경하고, 2층에서 청초호를 보며 커피를 마셨다. 이근형(31·서울 광진구)씨는 “인스타그램을 보고 왔는데 허름한 옛날 분위기가 이색적이고 좋다”고 말했다.

◇칠성 조선소 3대인 최윤성·백은정 부부.
■2대서 사라질 뻔한 공간 살린 3대=청초호 인근에는 소형 조선소가 10개 이상 있었지만, 이제 2곳 정도 남아 있다. 어획량이 줄고, 대형 선박 위주로 가면서 쇠락했다.
1952년 문을 열어 2대째 운영됐던 칠성 조선소는 지난해 8월, 모든 생산을 마감했다. 노후 준비를 위해 낡은 건물을 허물려던 60대 부부를 말린 것은 3대인 최윤성(38)·백은정(〃)씨 부부였다.
살롱인 단독주택은 최씨가 자란 공간이다. 조각 공부를 위해 서울로 대학을 진학하며 고향을 떠난 그는 미국에서 5년간 유학을 마치고 서울 토박이인 부인과 2013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소형 레저선박을 만드는 '와이크래프트보츠'를 창업했지만, 수요가 없어 공장 운영비도 못 건졌다.
최윤성 대표는 “어릴 때 놀던 공간, 풍경이 사라지는 것은 바라던 바가 아니었기 때문에, 창업 멘토 분들과 상의 끝에 카페를 만들기로 하고 함께 부모님을 설득해 6개월간 준비를 거쳐 2월 초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1950년대 지어진 조선소(윗 사진),최대표 부부가 만든 소형 레저선박.
■지역 커뮤니티 공간을 꿈꾸다=예술학도 출신인 최씨 부부는 '경영'에 밝은 사람들은 아니다. 외골수 같지만, 역설적으로 많은 외부인의 '지지'를 받고 있다.
카페를 오픈하며 SNS 홍보를 하지 않아도, 손님들이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면서 '속초 관광'을 검색하면 나오는 곳이 됐다. 하루 수백명의 방문객 중 90%는 외지인들이다.
선대로부터 내려온 공간을 살려 지역의 '종합 해양레저 문화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꿈은 전국 창조경제혁신센터가 2016년 주최한 지역혁신 사례발표 대회에서 1등을 받았다. 한국관광공사가 평창동계올림픽과 연계해 올해 초 개최한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강원 여행'의 코스로 포함됐다.
최윤성 대표는 “조선소의 버려진 옛 생산 도구를 오브제 작품으로 살려 전시 공간을 만드는 게 다음 구상”이라고 말했다.
오사카 시립대학의 마쓰나가 게이코 교수는 그의 저서 '로컬지향의 시대'에서 “젊은 세대는 규모가 작은 장사, 소상공 등 새로운 자영업을 추구하며 커뮤니티적 장으로 만들어가고 있다”며 “지방은 정주자 유치, 빈집 활용, 일자리 창출, 창업의 기반을 만들어내 자연스럽게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는데, 더 독자적인 시도를 해 나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신하림기자 peace@kw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