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라가 황금의 나라였다는 사실은 경주 일원의 커다란 적석목곽분에서 출토된 화려한 금관들이 잘 알려주고 있다. 신라가 동해안을 따라 강원지역으로 진출하면서 출(出)자 모양의 세움장식을 단 금동관과 동관이 강릉과 동해시에서 출토됐다.
동해 북평공단 지역의 추암동 고분군은 6~7세기에 조성된 중소형 무덤군이다. 이 중 한 무덤에서 동(銅)으로 만든 관이 죽은 사람의 머리에 씌워진 채 출토됐다. 관은 신라 특유의 금관 모양을 따르고 있으나 마지막 발전 단계다. 동관이 씌워진 두개골을 분석했더니, 그 주인은 성인 여자여서, 종교적 지도자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이와 관련해 '삼국사기' 초기 기사에 나오는 노구(늙은 여인)가 떠오른다. 용이 어린아이를 오른쪽 옆구리에 끼고 있는 것을 보고 그 아이를 기른 사람이 노구였다. 이 아이는 후에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왕비된 알영(閼英)이다. 고구려 유리왕의 아들 무휼이 부여왕에게 낸 어려운 수수께끼를 풀어준 이도 노구였다. 백제 온조왕 때에는 노구가 남자로 변했고, 동성왕 때의 노구는 여우가 돼 사라졌다고 한다. 즉, 삼국시대 초기에는 신이한 존재로서 늙은 여자가 등장한다.
고대 사회에서는 종교와 정치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신라의 경우는 여왕이 즉위하는 등 여성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황남대총 금관의 주인도 여자였다. 그렇다면 동해 추암동 동관 주인은 그 지역의 '노구'로서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었다고 여길 수 있다. 동해 추암동 동관의 주인도 앞서의 노구처럼 추암동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주는 신이한 존재였기에 추암동 사람들이 귀한 동관까지 머리에 올려 후한 장례를 치른 것이다.
■제작연도 : 신라 6~7세기
■출토장소 :동해시 추암동
■보 관 처 : 국립춘천박물관
<김동우 국립춘천박물관 학예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