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중언

[언중언]원행 대종사의 법향(法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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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남원기자

오대산의 봄은 더디 오지만, 그 산문(山門)을 가득 채운 슬픔은 봄꽃보다 먼저 흐드러졌다. 지난 16일 대한불교조계종 원로의원이자 월정사 선덕인 자광당(慈光堂) 원행(遠行) 대종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만장의 물결이 적멸보궁의 품을 따라 길게 이어졌다. 화엄루 앞마당에 모인 2,000여명의 사부대중 가슴에는 먹먹한 회한이 차올랐다. 큰스님께서 머무시던 자광당의 문은 굳게 닫혔으나, 그가 남긴 법향(法香)은 오대산 구석구석을 적시고 있었다. ▼원행 대종사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라는 불제자의 도리를 평생의 화두로 삼으셨던 분이다. 위로는 진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하라는 그 준엄한 가르침을 스님은 말로써가 아니라 묵묵한 행(行)으로 증명해 보이셨다. 정진 속에서도 재소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교화에 전력을 다하셨다. 종정 성파 스님의 법어처럼, 대종사는 이 시대의 선지식이었다. “진리의 삼매락을 누리소서”라는 마지막 인사는 남은 이들에게 절절한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영결식을 마친 법구가 다비장으로 향할 때 만장은 바람에 몸을 맡기며 흐느꼈다. 그 뒤를 따르는 스님들과 신도들의 무거운 발걸음은 떠나보내기 싫은 중생의 미련을 담아 한 걸음, 한 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거화(擧火)의 순간, “스님, 불 들어갑니다”라는 외침이 산천을 흔들었다. 이윽고 불길이 치솟자 육신은 연기가 돼 푸른 하늘로 흩어졌다. ▼다비(茶毘). 본래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거룩한 귀환이다. 한평생 지녀온 무거운 법의(法衣)마저 내려놓고, 스님은 비로소 맑은 향기가 돼 오대산의 바람으로, 한강의 시원으로 돌아가셨다. 이제 스님의 인자한 미소를 직접 마주할 수 없지만 스님이 뿌려놓은 자비의 씨앗은 월정사의 전나무 숲길마다, 그리고 그와 인연을 맺었던 수많은 이의 가슴속에서 다시 피어날 것이다. 삶과 죽음이 본래 둘이 아니라는 불이(不二)의 도리를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을 저미는 이 먹먹함은 어찌할 수 없는 범부(凡夫)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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