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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중언]‘문안정치(問安政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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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국 사회는 정치·이념·세대·지역 갈등이 깊게 뿌리내린 ‘갈등 공화국’에 가깝다. 선거 때마다 ‘국민 통합’이 외쳐지지만, 대부분 선언에 그치고 만다. 국회에서는 협치 대신 표 대결이 반복되고, 사회 곳곳에서는 ‘우리 편’과 ‘저쪽 편’의 구분이 일상어처럼 쓰인다. 이러한 통합 시도가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는 대개 법과 제도, 혹은 정치적 명령에 의존하는 ‘위로부터의 통합(Top-down)’에 머물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배우 덴젤 워싱턴은 지난해 11월 미국 대선 직후 인종 갈등에 관한 질문에 “사랑은 법으로 제정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 우리를 서로 좋아하게 만들 수도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통합은 정치의 산물이 아니라 “당신이 백인이든 흑인이든, 우리가 이렇게 서서 이야기하는 것” 같은 지극히 개인적 관계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누구를 지지했느냐는 건 당신 알 바 아니다”라는 발언 역시, 갈등이 일상이 된 한국 사회에 적지 않은 울림을 준다. ▼한국의 진영 갈등은 단순한 의견 차원을 넘어, 상대를 ‘다른 생각을 가진 시민’이 아니라 ‘적대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비인격화(Demonization)의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SNS는 의견 교환의 공간이 아니라 공격과 조롱의 전장이 되었고, 법적 판결이나 정치적 승패만이 정의의 기준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법적 승리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지는 못한다. 신뢰와 공감이라는 사회의 접착제는 제도만으로 대체될 수 없다. ▼진정한 통합은 대통령의 연설이나 국회의 결의문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평범한 시민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일상의 대화에서 시작된다. ‘누가 어느 당을 지지했는가’를 따지기 전에 ‘오늘 하루는 어떠셨습니까?’라고 묻는 관심, 즉 일상의 ‘문안(問安)’이야말로 갈등의 틈을 메우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정치 지도자는 ‘화합하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현실로 만드는 몫은 결국 우리 자신이다.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통합의 정치’는 바로 이 작은 안부 인사에서 출발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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